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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an 24. 2023

영어, 인정받음과 등 떠밀림의 역사

사람, 외국어, 그리고 소통


 대학 졸업 후, 25살 즈음이었다. 취업을 할까 어쩔까 하던 시기, 지역에서 꽤 큰 덩치의 입시 학원의 자체 독서실에서 알바를 했다. 한 달쯤 되었을까? 원장님이 내게 강의를 해볼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과목은? 영어 아니면 수학. 그때도 수포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나는 수포자는 아니었다. 수학을 잘 하고 말고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은 영어였다. 대학 시절 영어 강의 교수님께 인정받았던 기억을 빼고는 내게 영어란 수학을 선택하지 않아 남겨진, 나쁘지 않은 차선일 뿐이었다. 


 매일 남아서 판서(이런 말을 요즘도 쓰나?ㅎㅎ) 연습을 했다. 칠판을 보고, 학생들을 등진 채로 판서하는 것은 빵점이라고 했다. 검지로 길게 분필을 잡고, 반대쪽으로는 중지를 구부려 받쳐서 몸은 학생들 얼굴을 향한 채로 알파벳 쓰는 연습을 했다. 지금도 화이트보드를 쓸 일이 있으면 공책에 글씨 쓰듯 하지 않고, 강사 시절 하던 대로 쓰곤 한다. 문법을 내 식대로 정리하고,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나만의 문법 단계를 만들었다. to 부정사, 동명사, 관계사, 분사, 가정법 등... 요즘도 배우겠지만, 그 당시는 문법과 리딩의 무게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그렇게 강사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아이들에게 꽤 괜찮은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문법을 일상용어로 설명하니 재밌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개똥은 똥인가, 개인가? 똥개는 개인가, 똥인가? 당연히 개똥은 똥이고, 똥개는 개다. 무게 중심이 뒷단어에 있다. 그렇다고 앞단어가 전혀 상관없는 말인가? 아니다. 개똥은 개가 싼 똥이고, 똥개는 똥 묻은 개를 뜻한다. 동명사가 그렇다. 동명사는 기본적으로 명사다. 그런데, 동사로 만든 단어가 명사다. Seeing is believing.(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에서 ‘보다’라는 see 동사가 ing와 만나서 ‘보는 것’이라는 명사가 된다. 초중등 아이들에게 이 똥 얘기가 먹혔다. 정말 잘 먹혔다. 이런 식으로 문법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리고 한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정리를 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크게 배운 것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잘 배우는 방법은 다른 사람을 가르쳐 보는 것. 어려운 내용일수록 이미지 또는 표의 형태를 갖고 접근할 것. 타인이 인정해줄 때 내가 하는 일이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 지금도 나는 뭔가 복잡한 내용의 일을 할 때면, 마인드맵을 쓰거나 스케치북의 한 중간에서부터 핵심 키워드로 정리해나간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가운데) 내가 내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곤 한다. 맨 마지막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는데, 나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인정해준, 즉 그들에게 일종의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드는 일에서 큰 의미를 찾고, 더욱 매진할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영어는 내게 애증의 역사다. 21살 때 대학 교수님이 해준 칭찬 한 마디로 시작한 영어가 어설픈 강사 시절을 지나면서 내 삶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학점이나 성적, 취업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영어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 사람들로부터 내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 말인즉슨, 내 이름을 언급할 정도의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나 주변에 나보다 영어가 더 잘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때 영어는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었다. 영어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검증해야 했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영어를 잘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디서부터 잘 못 됐는지 나는 등 떠밀려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2023년이 되어서도 영어는 다이어트와 함께 새해 꼭 이루고 싶은 결심의 대명사다. 무엇이 이토록 영어를 목마르게 할까? 지금은 영어 유치원에 초중고 12년까지 하면 약 15년간의 영어 교육 아래서 크는 친구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길 가다가 외국인이라도 보면 혹시 나에게 길을 묻진 않을까 두근두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분명 지능이나 학력의 차원에서는 전 세계 누구에게도 꿀릴게 없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그런데 유독 외국어, 특히 영어 습득은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영어에 노출되는 정도가 많이 증가해서 문법 중심으로 성문기본영어나 맨투맨을 독파하지 않으면 안 됐던 내 세대보다는 외국인 공포증이 감소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어도, 지금 이곳에서 5년을 살았어도 영어 실력이나 습득 정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느낌은 없다. 다만, 외국어 습득에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출발선을 지났다는 기분은 확실히 든다. ‘외국인 공포’. 우리는 많은 영화와 OTT 드라마에서 수많은 배우들을 봐왔다. 하지만 스크린 속일 뿐. 직접 만나는 외국인은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완전!. 효과적인 언어 습득을 위해서 친구를 사귀라는 조언들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공부한 표현들을 사용하기도 전에 이미 외국인에게서 받는 낯선 느낌, 나와 다르다는 이질감은 내 뇌와 내 입과 내 귀를 얼어붙게 만든다. 우리가 공부를 덜 해서도 아니고, 지능이 낮아서도 아니고, 언어적 감각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저스트! 생소할 뿐이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사람 앞에서는 보통의 사람들 누구나 긴장하고 회피하고 싶어 하지 않나? 


 이곳에도 한국 사람들이 살고, 한인 마트가 있다 보니 영어를 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 그런 환경에서 나부터가 종종 만나는 영어 쓰는 네이티브 상점 직원들이 그렇게 수없이 써대는 how are you?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데 수년이 걸렸다. 이제야 나도 how are you?라고 물어볼 수 있게 된거다^^; 여전히 내게 그들은 노란 또는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나와는 전혀 다른 외국인이지만, 동시에 이제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나와 조금 달라 보일 뿐인 사람이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오늘도 신발 가계 점원의 친절한 행동에 감사한 인사를 하고, 그녀가 준 정보들이 정말 유익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도 그녀가 나의 질문에 해준 답들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 했다. 매일 겪는 이런 답답한 상황들이 짜증나고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나의 영어에 대해 관대함? 여유? 같은 것들이 생겨서인지 그냥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인정받고 싶어 시작했고, 등 떠밀려서 오늘도 나는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검색하고, 묻는다. 미드와 유튜브도 보고, 영어 자막을 켜고 보다가 끄고 보고, 그 자막들을 아이폰 텍스트 읽기 기능으로 캡쳐하고, 초등 수준의 원서를 읽기도 한다. 이곳 출신의 친구들과 페이스북 메신저로 몇 마디 주고 받기도 해본다. 최근에는 영화 <말모이>에서와 같이 내가 평소 쓸 법한 영어 표현들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 목소리로 녹음하고, 녹음본을 따라 소리 내어 읽는 일종의 모노 드라마를 찍는 난리를 피우는 중이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할까 생각해보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주저리주저리 이런 말 저런 말을 썼지만, 아마도 여전히 인정받고 싶고, 그 안에서 내 삶의 의미 몇 가지를 찾고 싶은 것 아닐까? 2,30대에는 타인의 시선에 갇혀서 영어라는 ‘도구’를 통해 나 자신을 학대했다고 생각했다. 영어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는 없나? 꼭 영어를 해야 하나? 편리하고, 선택과 기회의 폭이 넓어진다는 외국어 학습 옹호론자들의 말도, AI의 통역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굳이 외국어 공부가 필요 없다는 외국어 학습 무용론자들의 말도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영어 수준을 평가할 때, 나는 intermediate 정도로 보는데, 그저 advanced로 스스로를 평가하지 못 하는 자괴감에 시달렸던 때를 뒤로 하고, 내가 영어라는 도구를 통해 발전해왔고, 외국어로서의 영어뿐만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의미들을 배우고 성장해왔다고 믿는다.(가족도 먹여 살릴 수 있었고, 학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영어의 자리에 누군가는 축구나 공부, 패션 또는 뽀샵 능력 같은 것들을 둘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타인의 인정을 갈구해서 시작했던 일이, 그래서 하기 싫은데 자학하며 아무도 밀지 않은 등을 스스로 떠밀며 하던 일이 내 생활에 자연스레 안착할 때, 나에게 좋은 자극제, 마치 검사를 패스하여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안전한 채소들처럼,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성장제 역할이 될 수 있음을 배운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었고, 내 스스로가 자신을 인정할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등 떠밀려 영어를 배우고, 영어를 말한다. "How are you?"가 "안녕하세요"처럼 나오는 그날까지... 


202301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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