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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Feb 12. 2023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사람, 강박, 그리고 소통

 청문회 단골 멘트다. 심신 미약으로 그 자리에 선 사람들도 아니고, 취한 상태에서 참석했을리는 더욱 만무한데, 배울 만큼 배우고, 벌만큼 벌어 본 분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말이다. 책임회피와 면피용으로 말이다. 그런데 나도 이 멘트를 자주 되뇌인다. 질문에 대답할 일도, 사건에 대해 소명할 일도 없는 내가 말이다. 지독하게 기억이 안 난다. 


 텍스트가 주는 어감은 여러 가지다. 단기기억상실과 같은 의학적 후유증, 책임회피를 위한 방어멘트, 강한 트라우마에서 야기된 원인모를 자기상실(?) 상태, 체면 유지를 위한 모르쇠 정책의 일환 등. 노화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유독 기억의 측면에서 내게 나타나는 기억력 감퇴 현상은 매우 분명하다. 방금 쓴 ‘체면’이란 단어도 몇 분을 고민한 끝에 떠올랐다. 자존감, 자만감, 자신감 등을 비교하며 뭔가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며 몸부림치는 중 얼떨결에야 갖다 쓸 수 있었다. 


 기억해야 할 때 기억이 떠오르지 않다 보니 생긴 몇 가지 습관이 있다. 자기합리화. 변명의 목적은 아니다. 정말 기억은 안 나는데 뭔가 대답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생기다보니 자기합리화를 하는 말을 하게 된다. 물론 상대는 모른다. 이 사람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답답해 미친다. 정말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습관 하나가 강박이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잭 니콜슨 배우가 보여준 강박 연기는 요즘처럼 연기 모양새가 다양하지 못 했던 1998년에 아카데미 11개 부분을 휩쓴 ‘타이타닉’이 정작 남우주연상은 받지 못 하게 되는데 일조했다. 특정 타일 바닥만 밟아야 하고, 숟가락 세트를 놓는 장면 등은 저렇게까지?! 싶으면서도, 누군가에게는 강한 유대감과 친밀감 마저 느끼게 하는, 어떤 이들에게는 와닿는 생활 ‘강박’이었다. 숨어있던 강박이 영화를 통해 세상과 조우하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바로 앞 선 글을 통해 나는 나의 기록 습관에 대해 잠시 썼다. 말이 좋아 습관이지, 나는 그것을 강박으로 분류한다. 내 삶을 보호하고, 지나간 내 자신을 떠올리기 위함이다. 지금 이 기억, 지금 이 기분, 지금 이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꼭 떠올리고 싶은데, 내가 기억을 잘 못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 했던 20대에는 그런 것을 다 놓쳐버렸다. 그래서 20대 내 삶은 어땠는지,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거의 기억이 없다. 그나마 몇 개 기록하고, 찍어놓았던 사진들을 담아두었던 하드가 날아가면서 20대여 바이바이~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무엇 때문에 마음이 아팠고, 어떤 일로 그렇게 행복해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종종 막연한 기억 하나의 단서를 붙들고, 페이스북이나 옛날 이메일을 뒤적거릴 때면, 내가 뭐하고 있나 싶다가도 하나라도 발견하면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내가 이런 데를 갔구나, 내가 이 사람과 이런 대화를 했구나... 


 기억상실과 같은 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아마도 내 혼자 추측으로는 내 자기애가 너무 강한 반면, 나의 신체적, 심리적인 견고함이 그에 못 미치는 것 아닐까 한다. 물론, 복용 중인 약의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거의 30년 정도 되었으니까. 건강을 지키려면 그에 알맞은, 때로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해야 할 때가 항상 있었다. 운동이나 식습관 같은 것 말고, 충분한 잠을 자야 한다던가, 밤늦은 활동이 안 된다거나 말이다. 누군가는 그게 왜? 하겠다. 내게는 그게 왜. 라서 나 자신을 지키는데 노력해야 했고, 그렇게 하다보니 몸과 건강은 지켜나갈 수 있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강박이 병은 아니고, 그저 안고 살아가는 일행 정도가 되버렸다. 그 일행이 또 다른 일행을 부른게 강박이고, 그 강박이 지금도 나를 쫓아와 삶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습관이지만, 건강을 위해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습관 자체가 이미 하나의 강박으로 시작된 것이리라. 어쩌면, 강박이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 아닌가. 식후 담배 한 대일수도 있고, 저녁식사 소주 반병의 반주일수도 있고, 하루에 1시간 이상 해야 하는 쇠질일 수도 있으며, 창틀에 기생하는 먼지 하나 두고 보지 못 하는 것 일수도 있다. 


 기억이 잘 안 나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찍지 않으면 안 되는 기록 강박을 갖고 산다. 말 그대로 ‘갖고’ ‘산다’. 전에는 강박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비정상적이고, 건강하지 못 한 모습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곰곰이 내 삶을 돌아보니 강박은 그 사람을 보호해주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나쁜 영향을 끼치고, 주변에 피해를 불러오는 강박들도 존재할테지만, 동시에 어떤 강박이냐를 찬찬히 놓고 본다면, 그로 인해 오히려 내가 사랑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멜빈(잭 니콜슨)이 캐럴(헬렌 헌트)과 사랑하게 되는 시간처럼. 


 쓰다보니 원래 의도와는 달리 강박 옹호론으로 이어졌다. 그저 나를 살리고, 옆사람과 함께 살도록 돕는 강박이라면 이제는 기꺼이 같이 살 수 있다. 내 기억을 지켜주고, 지나간 나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이 강박 또한 얼마나 고마운가. 강박도 살리는 강박과 죽이는 강박이 있나보다. 


 기억이 잘 안 나서 생긴 강박이지만, 나를 살리는 강박이기에, 고맙다, 강박아!


202302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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