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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Mar 01. 2023

홍수 후 생긴 곳곳의 폐허들

사람, 구멍, 그리고 소통

 유례 없던 홍수가 내가 사는 이 나라를 덮쳤다. 동쪽 지역의 중소도시들은 말 그대로 싹쓸이 되었다. 과수원을 하는 어떤 이는 그 집 앞에 차오른 물 위에 둥둥 떠있는 수만개의, 아니 그저 저게 사과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열매 행렬들을 ‘물기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동네 주민 어떤 이는 홍수로 가득차 가슴까지 오른 물 근처에 있다가 하수도쪽으로 빨려내려가는 급류에 휩쓸리며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그가 유튜버였다, 홍수 물을 이용해 집앞 도로에서 카약을 타던 이였다, 물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이였다는 썰만 있을 뿐이다. 누구이든 안타까운 죽음이다.


 그리고 2주 후 또 한 차례의 이상기후가 이 나라를 덮친다. 이번에는 바람이었다. 지인 중에는 비바람, 특히 바람이 너무 세서 집앞에 서 있는 나무가 위태위태해 비오는 한밤 중에 스스로 나가서 진땀 흘리며 잘라 냈다는 이도 있었다. 사이클론이 불러온 2차 피해는 얼마 전 홍수로 인한 피해가 채 복구되기 전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폐허를 만들어내었다.


 이번 만큼 영어 뉴스를 많이 찾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100% 이해되지 않아도 지금 폐허가 되어 가는 곳들의 상황과 폐허가 되어가는 심정들을 보아야만 했다. 유독 안타까웠다. 한국에 살면서 IMF 사태, 성수대교 붕괴, 삼풍 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각종 전염병, 세월호 사태까지 각종 사건사고들을 접했었는데 특히나 이번 홍수 사태를 접하는 마음이 꽤나 복잡했다. 나이가 들면서 시야가 달라져서일까? 내 눈앞에서 재해의 흔적과 사고들을 목격하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주변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럴수가 하는 소식들 때문일까? 이 세 가지 뿐이랴. 내가 볼 수 없는 더 많은 이유들이 내 마음을 움직였겠다. 영화 <Inside out>에서 마음의 감정들이 주변환경과 사건에 끊임없이, 쉬지 않고 반응하여 다양한 삶의 모양새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과수원 주인의 젖은 눈을 보며, 떠내려간 이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며, 한밤 중에 집앞의 나무를 베는 미친 것 같은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지인의 얘기를 들으며, 한 가지 떠오르는 말.


 구멍


 생뚱맞았다. 그리고 끄덕여졌다. 폐허가 된 현실과 마음에 황망하기 그지 없는 과수원 주인에게 생긴 큰 구멍. 도로를 가득 채워 버스 운전석까지 차오른 그 물난리통에 도대체 그이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싶으면서도 그조차도 자신이 삶과 죽음 사이의 구멍을 통과할줄이야 알았을까? 저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되버린 그 작은 구멍으로 가족과 지인들의 마음에 깊은 구멍을 아로 새긴 그이. 초저녁에 잠든 3살 아들이 다칠까봐, 여리디 여린 아내가 불안해할까봐, 이 모든 염려와 걱정이 삶에 진짜 구멍을 내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기꺼이 비에 젖고, 바람에 날리고, 자신도 겁나지 않을 수 없는 그 바람과 맞붙어 나무를 잘라내고만 지인.


 사람마다, 시대마다, 하루마다, 사건마다 우리는 이것들을 관통하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키워드를 가진다.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을 꿰는 키워드는 사람이다. 너무 뜬구름일까? 나조차 그런가 싶지만, 역시나 사람이 빠지면 모든 글도, 모든 영화도, 모든 놀이도 의미가 사라진다. 사람에 의해서, 사람을 위해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일들에는 의미가 생긴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보면, 하늘에 구멍이 생겼나 싶을 정도의 비가 온 세상을 덮어버린다. 이번 홍수도 분명 내게 구멍을 뚫었다. 무슨 구멍일까? 그 구멍으로 어떤 의미가 빠져나가고, 어떤 의미가 새어들어왔을까?


 지금은 매미가 울고, 뜨거운 햇빛에 습하기까지 한 날씨지만, 여전히 홍수라는 구멍으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가버린 사람들의 마음은 물기 가득하다. 많은 구호 단체와 인종을 막론한 개인들이 음식을 나르고, 옷을 전달하고, 복구 작업에 손 하나를 더 얹는 열심으로 임하는 중에, 그들의 노력에 냉소로 답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묻는다. “수재민들 속에 생긴 구멍은 어떡하나…”


 구멍은 도둑과 같이 찾아온다. 구멍은 묻지마 살인과 닮아 있기도 하다. 구멍은 나만의 노력으로는 메울 수가 없다. 구멍은 나에 의해 인식될 때만이 빵꾸난 채로 살지 않을 수 있다. 구멍은 나를 멍하게 만들지만, 멍함에 빨려들어가다가는 하수도 그이처럼 인생이 휩쓸려 갈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멍난 인생이 필요로 하는 건 멍 때리는 시간들이다.


 2023년 이제 겨우 3월인데, 이제 벌써 3월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내게도 꽤나 크고 작은, 실제적이면서 감정적인 구멍난 사건들이 일어났다. 잘 헤쳐나가고 있는 것도 있고,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일도 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선택. 그럼 무슨 선택?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내칠 것인가 하는 선택. 그 후에는? 배울 건 배우고, 지울건 깨끗하게 지워야지.(그게 그렇게 잘 안 된다^^;)


  홍수 속 생긴 그들의 구멍에 부디 recovery가 일어나길 기도해본다. 구멍 가운데 휩쓸리지 않고, 주변에 손도 내밀고, 내미는 손을 잡기를 바래본다. 부서진 집과 아작 난 도구들, 침수된 차들을 마주하더라도 그것들을 자신들의 미래로 인식하는 구멍난 사고의 오류에 빠져들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본다.


  내가 한 때 가장 싫어했던 말, 하지만 여전히 어느 곳, 누구에게든 필요하다고 믿는 그말로 맺는다.


 “힘들더라도 힘내시길 바래요. 포기하지 마세요!”


202303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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