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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ey Sep 10. 2019

왜 패션을 선택하게 되었는가

운명같은 사랑을 만나게 되기까지



  여름의 향이 가득한 이태원 밤, 어느 선술집에 저와 친구는 나란히 바에 앉아 소주를 한잔 합니다. 오묘한 농담이 오가는 남녀 테이블 사이에서 우린 적잖이 취해서 이래저래 다양한 이야기를 합니다. 몇 달간 보지 못했을 때 있었던 회사 이야기, 시시껄렁한 농담과 지나가버린 연애와 여자 이야기 그리고 아주 조금 나라의 미래 따위들. 식은 닭날개 꼬치를 쿡 쑤쎠대던 친구는 묻습니다.

‘어쩌다 패션을 하게 된거야’

 어쩌다 라는 단어를 곱씹습니다. 분명 제 대학 전공은 패션디자인이나 의상 디자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인문 대학의 음악 동아리에서 만났고, 우리가 다니던 대학의 캠퍼스에는 예체능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 ‘행정학과’를 전공했습니다. 그렇기에 패션 브랜드에서 머쳔다이져 (Merchandiser, 줄여서 MD) 를 10년째 하고 있는 제가 신기할 것입니다.

‘글쎄, 뭐 한번에 사랑에 빠지는 느낌, 마치 첫눈에 반한 스토리, 그런거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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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군대를 회상합니다.
 군대에서 일병이 끝나갈 쯤 여유라는 게 조금씩 생겼습니다. 좋은 선임들이 있었고 레이더 병이라는 직책으로 매일 근무를 했지만 훈련을 거의 하지 않아 잠을 부족한 것 외에는 괜찮은 생활이었습니다. 길어지는 무료한 시간을 텔레비젼을 보는 것과 짧은 운동시간으로는 채우기 어려웠습니다. 책을 읽기도 했지만 군대 내에 읽을 것이라곤 맥심이라는 잡지나 병영 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맥심은 언제나 인기가 많아 항상 마지막에 보기도 했지만, 히히덕 거리는 남자애들 농담 같은 재미의 잡지었기에 쉬이 넘어가는 가벼운 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임이 잡지를 잔뜩 사왔습니다.

 ‘야, 이거 묶음으로 싸게 팔길래 잔뜩 사왔다. 한번 봐-‘

 4권 정도에 잡지 묶음에는 맥심과 그보다 더 외설적인(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잡지, 그리고 GQ가 2권 있었습니다. 군대 오기 전, 여자친구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봤던 잡지었습니다. 비싼 명품을 휙휙 걸쳐댄 비현실적인 모델들이 가득한 잡지. 몇천만원을 호가하는 가방과 시계.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얼른 맥심 잡지가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화장실을 갈 때 읽을 거리를 들고 갈 수 있는 연차가 되었기에 맥심을 찾다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포기하려던 찰나, GQ가 덩그러니 있는 것을 보고 하나 집어들었습니다. 화장실 벽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나프탈렌 향과 화장실 특유의 냄새가 뒤섞인 기분 나쁜 화장실 변기에 앉아 GQ를 열었을 때, 생각보다 글이 많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읽었고 특유의 어려운 말들 (가령 영어가 뒤섞인 문장, 이해할 수 없는 전문 용어 등) 이 없어서 내용이 쉬이 잘 읽혔습니다. 패션 하는 남자의 뻔하고 허세 가득한 글 보다는 수필처럼 담백한 글이나 소설처럼 상상하게끔 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재밌네 라는 말을 반복하며 읽어나갔습니다.

 ‘Tom Ford, ...’



 화보 페이지를 무심히 넘기던 그때 보았습니다. 단단하게 만들어진 블랙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를 입고 하얀 화이트 셔츠에 블랙 타이, 그리고 정갈하게 꽂아진 타이 핀과 행거치프. 얼굴의 반을 덮은 수염과 살짝 올라간 헤어 라인. 미남의 얼굴이지만 천박하거나 가볍지 않고 기품과 우아함이 가득 담긴 자신감 넘치는 미소. 톰 포드의 첫 만남 때 저의 기억은 이렇습니다. 화보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그리고 그의 브랜드 슈트를 입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화려함, 우아함, 섹시함을 모두 담은 옷이 있구나.’

 사람의 아우라를 보고 압도된다는 것을 지면으로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봤던 그 어떤 모델, 배우도 그와 같은 힘을 가진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Tom Ford라는 이름의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의 모습과 브랜드는 어떤 힙합 음악보다도 큰 울림이고 어떤 예술작품보다 황홀했으며,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출처 : Vogue youtube

 첫 눈에 그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그처럼 되고 싶다.’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도 없이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던 제게 그는 하나의 목표이자 롤모델이 된 것입니다. 겨우 지면 몇 장만으로 말입니다. 현실에선 지면 몇 장에 불과하지만 저에게는 하나의 영화같았습니다. 락스타를 음악과 공연을 보고 락커가 되기를 결심하듯 전 Tom Ford를 보고 결심합니다.

 ‘새로운 Tom Ford가 되겠다.’

 그 이후 군대 내에서 패션을 배우기 위한 방법부터 찾았습니다. 제대를 하면 어떻게 공부를 할지, 어떤 것을 주요로 할지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패션업내에는 디자이너, 엠디, 에디터, 마케팅 등 다영한 직종이 존재합니다.) 고민합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반대 없이 공부할 방법을 깊히 생각합니다. 부모님은 아주 오래전에 패션업을 하셨고 실패를 겪고 다른 일을 하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정학과를 들어간 것은 부모님의 의견이 높았습니다. 고시공부를 해서 공무원이 되어 특출나진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길 바라는 마음이셨고 저 또한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인생에 특별한 드라마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로움을 만나 드라마를 꿈꾸게 됩니다. 그리고 얼떨결에 들키고만 패션업에 대한 열정을 부모님은 인정하십니다. 다만 조건이 걸립니다. 패션학 공부를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행정학과를 같이 수료해야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두 가지 전공을 공부하게 됩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전공을 크로스로 공부하며 생각합니다.

 ‘진정 원하는게 생기면 어떤 것에도 동기 부여가 가능하다.’라고 말입니다.

 행정학과에는 도시 디자인이 있습니다. 계획 도시 부분부터 도시 공공물에 대한 디자인까지, 다양한 디자인이 행정학과에도 존재합니다. 저는 도시 디자인과 함께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학위를 가지게 됩니다. 지금의 패션업에서 일하게 되었죠.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원하는 걸 가지는데 노력은 제가 할 수 있는 땀의 하나일 뿐입니다.


 가끔 지칠 때 생각합니다.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 이 곳을 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말입니다. 물론 지금도 노력하고 있으나 가끔 잊을 때는 톰포드의 영상 혹은 화보집을 꺼내놓습니다, 요즘처럼 지치는게 길어질 때는 아침 출근 시간에 그의 사진을 잠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가 되기엔 멀었다는 걸, 더 노력해야한다는 걸, 그래도 내가 해야할 것이 해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제가 패션을 시작하게 된 건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꿈을 언제 결정하게 되었나요.


 

출처 : 필자 인스타그램 / 대학생 시절 한창 패션을 사랑하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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