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6일 맑은 하늘 한남동
https://www.youtube.com/watch?v=VsQpmHZACew
날이 무척 맑았다. 한 차례 소나기가 왔지만 금새 다시 맑아졌다. 기분이 좋아질만큼 상쾌함이었다. 휴일과 잘 어울리는 날씨였다.
오늘은 오랜만에 여성분과 첫 만남이 있다. 내일이 평일임을 생각하면 긴 시간은 보내진 못하겠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이성과의 만남에 긴장을 하면서 이삿짐에서 유일하게 넣지 않은 슈트를 꺼냈다. 특별한 날에 입는 슈트, 잘 다려진 화이트 셔츠에 광택 나는 실키한 실크 타이를 매고 향수를 뿌린다. 그저 좋은 남자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나기로 한, 처음 가보는 와인 샵에 상대는 먼저 도착하고 나도 곧 도착했다. 조금 시끌시끌한 가게 안 쪽 그녀를 발견하고 앉는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을 읽는다. 읽었다. 그래, 그건 실망이었다. 분명히. 눈치가 없진 않아서 그게 부정과 긍정 중 어디인지 안다. 그건 분명 부정이었다.
샴페인 한 병에 작은 치즈 하나, 간소한 자리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그녀와 나는 오랜 이야기 속에 접점을 찾지 못했다. 우리의 공통점은 없었고 간간히 나오는 웃음만이 그나마 어색한 공기를 다독여주었다. 다만 그것은 침묵을 이기진 못했다. 침묵은 자꾸 필요 없는 질문을 하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우리의 노력은 몇 시간이 되지 않아 끝났다. 가는 그녀가 타는 버스를 배웅해주고, 쇼핑을 하려던 마음을 돌려 맥주 한잔을 기울인다. 아무 노래도 아무 영상도 보지 않고 그저 밖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홀짝였다.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을 향해,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까지 했었나 말이다.
크지 않은 키, 잘생기지 않은 얼굴, 부족한 내 스펙이 어디 하루 이틀이더냐 싶지만 가끔은 눈물이 날 정도로 서럽다. 내가 나를 알아서, 너무 잘 알아서 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이런 상황에서는 무너진다. 내 노력의 결과가 아직은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걸까 하고 말이다.
아니 내가 부족한 것은 단순히 그것 뿐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결여된 것은 많을 테니까. 결국 나 자신을 채우지 못한 결여된 무언가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던 마음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 많은 옷을 사고 더 많이 향수를 뿌리고 매일 달리고 집착하는 모습, 그 속에서 난 자존감을 채우려 했던 걸까.
오늘은 소주가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