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8일 하루종일 흐리다 깊은 밤 중에 소나기
https://www.youtube.com/watch?v=srEamVTM2OU
퇴근길에 잠시나마 얻은 지하철 좌석의 자유에 얕게 들어간 잠을 깨우는 전화가 왔다. 어머니였다. 최근 이직과 이사 준비로 정신없을 자식의 바쁜 시간을 피해 저녁 즈음 전화를 거신 거였다.
'전화 괜찮아?'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거는 전화에도 어머니는 조심스럽다. 혹여나 피곤한 자식에게 피해를 줄까 봐 혹은 아직도 일하고 있을 시간에 방해가 될까 봐. 밝은 목소리로 괜찮다 말하고 살짝의 어리광을 피운다. 그렇게 어머니를 안심시킨다. 가끔은 어린아이 같은 반응에 어머니는 안심하신다. 그걸 독립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어리광은 가끔은 반찬 좀 달라는 투정으로 가끔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약속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일은 어때? 할만해?'
꽤 자주 있는 이직이고 일을 한지도 벌써 12년이 되었는데도 늘 걱정하시고 궁금해하신다. 원래 부모란 그런 것이라고 말하셔도 늘 걱정으로 전화를 거는 어머니가 가끔은 답답하다. 이제 조금은 무덤해지실만도 할 텐데 하면서.
괜찮다는 이야기 속에 김치는 필요하지 않은지 요즘도 술 많이 마시는지 밥은 거르지 않고 잘 먹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휴가 이야기가 나왔다. 다시 눈물이 나온다.
이직 전 휴가가 생겨 부모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후쿠오카를 다녀왔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 속 부모님을 모시고 간 첫 여행, 첫 해외여행이었다. 모든 계획을 세우고 시작부터 끝까지 알아보았던 내 짧은 여행 경력 속 가장 치열하게 준비했던 여행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패였다. 서로 다른 두 분을 맞춰드리기 쉽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예민함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 분명 부모님은 내 눈치를 봤으리라. 알지만 나는 다음 스텝을 위해서 밀어붙이기만 했다. 부모님과의 첫 해외여행은 아쉬움만 가득했다.
들어오는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이야기하셨다.
'고마워. 아들 덕분에 이렇게 재밌게 다녔네. 잊지 못할 거야.'
바래다주겠다는 부모님의 제의를 뒤로 하고 먼저 보내드린 후 공항버스를 타서는 내내 울었다.
그저 울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비가 오는 것처럼 흐려진 시야 속에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짜증을 내고 예민했을까. 당신이 원했던 건 그저 같이 낯설지만 새로운 곳에서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것일 텐데, 난 뭐가 그리 급하고 중요하다고 빠른 걸음을 재촉하고 손 한번 잡질 않았을까.
후회와 아쉬움 속에 보낸 여행의 기억이 과거에 무심했던 가족의 모습마저 떠오르게 되었다.
이번 주말에 부모님 만나러 가야겠다. 가서 어머니 김치 좀 담아 달라고 칭얼대야겠다. 아버지랑은 소주 한잔도 해야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걸 지금은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