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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ey Nov 13. 2023

Blazer와 Old


나이가 들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면서 좋은 점이라면 단연 클래식 스타일이 잘 어울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슈트를 아무리 잘 입어도 어울리는 느낌이 조금 덜했고 (키가 한몫 했겠지만요), 조금 현대적인 느낌으로 입어야 그나마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슈트를 입어도 잘 어울리는 나이와 얼굴이 되었고 꽤 만족합니다. 물론 클래식 스타일에 익숙해진 제 몸과 마음이 은연 중에 나타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 중 가장 좋은 것은 블레이저를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슈트 재킷보다 조금 더 두꺼운 소재로 만들어진 단품 블레이저는 봄과 가을이면 꽤 활용하기 좋은데,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어려운 아이템이 지금은 거의 매일 손이 갈 정도로 좋습니다. 정중하고 차려 입은 느낌이면서 슈트보다는 덜 드레시하고 셔츠는 물론 니트에도 잘 어울리는 아이템 블레이저는 마흔을 바라보는 최근 몇 년 사이 저에게 애정어린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저는 늘 말합니다. 나이를 먹고 어울리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 좋아하는 음식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 모험이 아닌 도전을 구분하고 해볼 수 있다는 것. 20대의 방향없는 삶, 30대의 살아남기 위한 분투를 넘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알게 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시기에 잘 맞게 수선된 블레이저는 늘 저를 편안하게 해줍니다. 이 아이템 하나면 언제나 적당한 격을 맞춘 스타일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든든한 친구를 곁에 둔 마음입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농익은 와인을 구분하고 좋아하게 된 것처럼 좋은 옷이 잘 어울리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블레이저가 함께 할 지 기대가 되는, 마흔을 2달 앞둔 초겨울 낮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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