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스러운 삶을 위해, 향수를 뿌린다.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있는데 빠지지 않는 것 중에 ‘향수’가 있다. 패션을 삶의 한 카테고리로 넣었을 때부터 향수는 꼭 해야 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아름답고 영원한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조화가 생화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건 향이 없기 때문이다. 근사한 옷을 입더라도 멋진 향수가 곁들여지지 않으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혹은 화이트 셔츠에 베이지 치노 팬츠를 입는 무심한 차림에도 향수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이미지는 달라진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미지와 삶을 위해 뿌리는 사치스러운 아이템 향수는 꽤 긴 시간 동안 변화하였다.
첫 번째 향수는 이세이 미야케였다. 흔히 20대 초 중반의 남성들이 뿌리는 향수를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가지면서 새삼 성인이 된 것을 깨달았다. 가족 중에 향수를 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다른 사람의 향수보다 내가 뿌린 것이 꽤 진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예상보다 가격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힙합 패션을 입는 편이어서 향수보다는 담배냄새가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또 그 향수가 그렇게까지 내게 어울리는지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랐기 에이세이 미야케 향수는 반도 쓰지 못한 채 버려졌다.
군 제대 이후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향수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구두보다 먼저였다. 사람에게 주는 임팩트가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보여주었을 때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후였다. 샤넬의 블루 드 샤넬을 뿌렸다. 감색의 용기가 클래식하면서 단단해 보여 멋졌고 향은 생각보다 사람들의 취향을 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조금은 스파이시한 향이 조금은 더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1여 년 정도 사용하다가 우연찮게 클래식 복식 카페에서 보게 된 크리드의 임페리얼 밀레 지움으로 넘어갔다. 사람들의 취향이 강하게 갈리는 향으로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한 상태에서 혹은 너무 캐주얼한 상태에서 뿌리면 역효과가 나는 향수였다. 이 향수를 뿌릴 때쯤 나는 슈트를 맞춰 입기 시작하였다. 향수를 과거에는 단순히 좋은 향을 뿌리는 것으로만 여겼다면, 이때부터는 향수와 스타일을 맞추는 단계에 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톰포드를 뿌린다. 블랙 오키드 그리고 타바코 바닐라 두 가지를 사용한다. 향이 강한 편이어서 취향이 극명하게 나뉘는 이 향수는 적어도 서른은 넘어야 어울리는 무거운 향이다. 톰 포드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상품을 하나씩 구매하고 사용해보자는 생각으로 구매한 향수는 생각보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패션 스타일에 잘 어울렸고 최근 2년간 내 몸에는 오로지 톰 포드의 향수만이 가득했다. 특히 타바코 바닐라는 가격이 높은 편이기에 중요한 날만 뿌리는 향수가 되었다. 이 향수를 뿌린 날은 꼭 2-3명씩은 물어본다. 향수 어떤 거 쓰세요? 그땐 말을 침착하게 해야 한다. 마치 제임스 본드가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처럼, “톰 포드, 톰 포드 타바코 바닐라 써요.” 이런 사치스러운 것들이 꽤 근사하게 느껴진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Wear me의 WE+TWEED를 뿌렸다. 겨울 코트에 어울리는 조금은 무겁지만 따뜻한 향이다. 캐주얼 하게스 타일링을 할 때에 혹은 주말에는 이 향을 뿌리고 여유를 즐긴다. 시시각각 뿌리는 향이 달라지면 옷차림이 달라질 때처럼 내 몸과 마음가짐도 조금은 달라진다.
지금 당신의 손목에서 나는 향수는 어떤 것인가. 향수 향이 아니라면 당장 어떤 걸 살지 고민해 볼 것이고, 만약 옷장에 걸려있는 옷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바꿔볼 생각도 해봐야 할 것이다. 향수 하나가 꽤 짧은 시기에 많은 걸 판단하게 만든다.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외모 그리고 향. 두 가지면 당신을 판단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는다. 내가 슈트에 어울리게끔 만드는 것에는 단순히 옷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향이 하나의 촉매제로 큰 역할을 하였다. 자, 당신의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 향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