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서게 다린 울 팬츠를 매일 입는 루틴에 대한 이야기
주말이면 음악을 틀어 놓고 일주일간 입은 팬츠를 모아 다림질합니다. 울, 리넨, 코튼소재에 앞 주름이 잡힌 팬츠를 주로 입기에, 하루 입고 나면 스타일러로 먼지와 냄새를 없애놓은 후에 주말에 몰아서 다림질을 합니다. 다림판 위에 팬츠를 올려놓고 분무기로 물을 뿌린 후 광목천을 위에 덧대어 지그시 눌러줍니다. 스팀 다리기는 어쩜 그리 매번 고장 나는지, 결국 클래식하게(?) 보통의 다리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포멀 슈트 팬츠는 물론이고 캐주얼 코튼 팬츠마저도 주름을 잡아 다려 입는 건, 뚝 떨어지는 팬츠의 실루엣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칼에 베일 듯 날 선 팬츠의 앞주름이 구두까지 뚝 떨어지면서 멋진 실루엣이 만들어 냅니다. 걸을 때마다 흩날리듯 일렁이다가 아래로 모아지는 모습은 유려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걸 진정 '멋'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날 선 팬츠를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잘 다려 입으면 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소재에 따라 매력이 다릅니다. 일렁이는 실루엣이 잘 표현되는 소재는 울, 캐주얼한 리넨과 코튼은 단단하게 주름을 표현합니다. 그 멋이 각기 다른데, 울은 부드러운 멋이 느껴지고 리넨과 코튼은 단단한 멋이 느껴집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기보다는 각기 가진 매력이 사뭇 다릅니다.
날 선 팬츠를 입을 땐 '자세'가 중요합니다. 늘 올곧진 않아도 앉아 있을 때 가능한 정갈한 자세를 취하고, 걸을 때는 똑바로 걷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잘 다려진 앞 주름에 맞춰 자세를 올곧게 할 때 팬츠의 매력이 돋보입니다. 곧은 움직임 속에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처음 패션을 시작할 때부터 전 늘 잘 다려진 팬츠를 입고 다녔습니다. 학생 때부터이니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귀찮지 않냐고요. 편하게 앉고, 주름 신경 쓸 필요 없는 스웻 팬츠를 입고 싶진 않냐고요. 네, 저도 편하게 좋고 자유로운 게 좋습니다.
날 선 팬츠를 입는 건, 시작할 때의 마음을 다잡기 위함과 우아함을 갖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패션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를 이겨내야 했기에 '늘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일이 힘들어도 무언가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저 스스로에게 주기 위해 팬츠를 늘 날 서게 다려 입었죠.
또한 '우아한 남자'이고 싶었습니다. 처음 패션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보았던 날 선 팬츠의 아름다운 화보를 늘 제가 갖고 싶었습니다. 일렁이는 팬츠의 흔들림 속에서 사뿐히 걷는 모습으로 남자가 얼마나 우아해질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패션에 대한 다짐, 그리고 '우아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늘 날 선 팬츠로 표현됩니다. 오늘도 팬츠를 다립니다. 이 팬츠로 표현되는 제 마음이 저는 물론 모두에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