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를 아시나요? 우디 앨런이 감독을 맡은 영화로 193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사랑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 특유의 유머가 겹겹이 스며든 영화로 아름다운 미장센과 황홀한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특히 영화 전체의 명도와 채도는 늦은 오후 햇살의 느낌으로 컬러를 표현하는데 마치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따뜻한 감성이 느껴집니다. 영화의 재미 유무를 떠나 영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꽤 재밌는 영화입니다.
제가 여기서 재밌게 본 것은 당시 부유층의 클래식 스타일입니다. 클래식을 제대로 맞춰 입었던 당시의 부유층은 점심 식사, 저녁 식사, 파티 등 각 장소에 맞는 옷을 입었습니다. TPO를 잘 맞췄다는 것이죠. 그때 당시에는 옷차림이 매너이자 착용자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으니까요.
'카페 소사이어티'에서는 이 부유층들의 옷이 난색 계열로 표현됩니다. 화이트-아이보리-브라운으로 연결되는 난색 계열의 슈트와 재킷, 그리고 팬츠는 은은하게 발색되는 고급 소재의 수준 높은 표면의 컬러와 부드럽게 떨어지는 실루엣이 멋지게 표현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용에 한번 빠져들고, 스타일에 한번 빠져듭니다. 사실은 스타일 그리고 옷에 먼저 빠져들어버렸습니다.
그중에서도 디너 모임을 위한 스타일은 제 마음을 완전히 빠져들게 했습니다. 화이트 디너 재킷에 블랙 팬츠, 보우 타이에 광택을 잔뜩 머금은 페이턴트 슈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시상식이 아니고서야 보기 힘든 스타일입니다. 네, 전 언젠가 이런 스타일을 입어보고 싶지만 입을 곳도 약속도 행사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입고 다닐 수 있는 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디너 재킷'입니다.
디너 재킷은 매우 포멀 합니다. 턱시도 재킷으로 표현되는데 꼭 실크를 라펠에 곁들인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밝은 컬러의 소재를 사용한 재킷도 그에 포함됩니다. 저는 특히 '아이보리 디너 재킷'에 큰 관심을 둡니다. 아주 얕은 노란색을 곁들인 미색 소재는 쨍하고 화한 화이트 보다 고급스럽고 부드러우며 아름답습니다. 저는 퓨어 화이트보다는 오프 화이트를 좋아하고 그것은 아이보리 혹은 크림 컬러에 대한 사랑에도 연결됩니다. 부드럽고 우아하며 아름답습니다.
이 디너 재킷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던 저에게 이 영화는 소유욕에 불을 지폈습니다. 갖고 싶다면 가져야겠고, 찾을 수 없다면 만들어야겠습니다. 어깨는 넓고 단단하며 허리는 잘못하면서 긴 기장의 우아한 티저 재킷, 그 재킷을 찾으러 비스포크 샵을 갑니다.
그간 방문을 미뤄왔던 비스포크 샵을 찾아갔습니다. 저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대표님이 만드는 영국식의 슈트와 재킷이 주력인 샵에서 저만의 디너 재킷을 만듭니다. 대표님과 앉아서 이야기합니다.
언제 입을지? 어디서 입을지? 어떤 옷과 입을지? 어떤 무드를 만들고 싶은지? 이 모든 질문에 답해야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어필할 수 있습니다. 오더 대화가 1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장님이자 테일러님은 저와 교감하며 어떤 옷을 만들어야 할지 정리합니다. 미색의 우아한 디너 재킷으로 방향성을 결정합니다. 이후 저는 곧 중가봉을 통해 수정을 통해 완성본을 만들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기성복이 잘 맞는데 비스포크를 하는 이유를 말이죠. 답은 하나입니다. 제가 원하는 무드, 컬러, 스타일, 그리고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비스포크를 하는 것은 세상에 없는 저만의 것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테일러와의 정확한 의사소통은 내가 원하는 명확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비스포크의 결과는 어떠할지 기대와 걱정과 설렘임이 가득합니다.
원하시는 슈트가 있나요? 원하시는 디너 재킷이 있나요? 그렇다면 비스포크를 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많은 대화를 통해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어필해 주세요. 그리고 만들어진 내 옷에 애정을 가득 담아주세요. 옷이란 건 SPA처럼 가성비로 만날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이 원하는 그것 하나만이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비스포크를 경험한다는 것, 나를 위한 애정의 표현이자 한 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