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29. 이야기
여름은 제게 힘든 계절입니다. 좋아하는 슈트는커녕 셔츠도 입기 어려울 정도의 더운 날씨가 있으니까요. 멋진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피할만한 옷을 입는 게 목적이 되는 아쉽고 힘든 계절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패션은 하나의 절충점을 찾게 됩니다. 숏 슬리브 니트. '숏 슬리브'라는 우아하지 못한 디테일을 좋아하지 않는 제겐 우아한 아이템의 정석 '니트'에 붙이기에는 참 아쉬울 뿐입니다. 그런 아쉬운 마음이 사그라든 것은 영화 '리플리'에서 디키(주드로)의 시칠리아에서 보여주는 스타일을 본 이후입니다. 패턴이 들어간 짜임의 숏 슬리브 반팔 니트는 휴양지와 어울리는 밝은 컬러가 캐주얼하면서도 특유의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디키가 보여주는 스타일은 부유한 자제의 여유롭고 화려한 스타일을 기반으로 하는데, 시칠리아 섬에 어울리는 숏슬리브 니트는 리조트 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자 여름에 도심에서도 충분히 멋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이죠.
이후 저는 카라 니트가 아닌 숏슬리브 니트를 찾기 시작합니다. 카디건처럼 앞이 오픈되는 이 아이템은 안에 슬리브리스 니트 혹은 티셔츠와 같이 입었을 때 특유의 여유로움을 표현할 수 있어 좋습니다. 무엇보다 목부터 가슴 아래까지 오픈되는 개방감은 여름에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스타일링입니다. 저는 이 스타일을 즐기기로 마음먹고, 숏슬리브 오픈 니트와 슬리브리스 그리고 목걸이를 구매했습니다. 깡충한 총장의 팬츠 혹은 버뮤다 쇼트팬츠에 송치 로퍼를 신으면 완성됩니다.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스타일, 여유로운 리조트 룩.
봄과 가을, 특히 겨울이면 온몸을 가리는 저의 스타일에서 몸이 오픈되는 것은 오로지 여름뿐입니다. 그간 어떻게든 입으려 했던 여름 재킷은 잠시 놓아두고 8월의 뜨거운 햇살을 낭만으로 감내하기 위한 스타일을 오늘도 즐겨봅니다. 살짝은 불량해 보여도 괜찮습니다. 여름이니까요. 오로지 이 여름에만 할 수 있는 스타일, 오늘도 즐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