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패턴이 매력적인 이 셔츠를 구매한 지 벌써 18년이 지났습니다. 어머니의 친구분께서 개업하신 의류 매장에 들렀다가 어머니가 저에게 사주신 반팔 셔츠입니다. 오랫동안 제 스타일과는 멀다고 느껴져서 입진 않았지만 버리진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사주신 얼마 안 되는 옷 중 하나이며, 언젠가 입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 옷은 작년부터 열심히 입기 시작했습니다. 한 여름에도 재킷을 입는 건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그걸 작년에서야!) 여러 반팔 이너를 찾아 입는 중 어머니가 주신 이 셔츠를 기억하고는 입기 시작했습니다. 5-6년 전에도 몇 번 입기는 했습니다만, 여름 시즌 내 한번 정도 입었던 게 전부였다면 작년부터는 여름에 줄곧 잘 입어주고 있습니다. 얇은 아사면에 적당히 들어간 패턴, 요즘스럽지 않은 적당한 레귤러 핏에 적당한 길이가 매우 좋습니다.
어머니의 취향대로 골라주신 이 옷을 18년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잘 입을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제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아이템과 스타일을 저에게 미리 전해준 어머니의 감각은 실로 놀랍습니다.
어머니의 취향은 매우 확고했습니다. 젊었을 적에는 하이힐을 벗지 않았고 늘 화장을 은은하게 한 후 향수 대신 바디 로션을 발라 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코듀로이 브라운 슈트를 입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게는 불편했지만 선생님이 칭찬해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취향은 늘 확고하고 멋졌습니다.
이 셔츠에 손이 많이 가는 것은 결국 어머니의 아들인 저에게 취향이 그대로 내려온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늘 포마드를 바르고, 면도를 하고 옷을 다려 입는 것처럼 깔끔하고 드레시한 스타일을 좋아했던 어머니의 취향 그대로를 닮아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요즘 들어 어머니가 브랜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십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어머니는 톰포드의 과감한 발색의 화장품과 미우미우의 키치 한 디테일의 매력에 대해 궁금해하십니다. 전 최선을 다해 설명드리면서 재미있어합니다. 그리고 이 브랜드 또한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이죠. 13년 넘게 패션업 하게 된 저를 가득 채운 건 어머니의 취향이 가득 차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