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구매 이야기
의류 산업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옷을 오랫동안 즐기고 살아온 입장에서 요즘 본질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잘 만들어진 옷이란 무엇인가, 잘 팔리는 옷과 좋은 옷의 차이점은 어디서 올까 하는 옷의 필요성과 만듦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고민은 자연스럽게 새롭게 구매하는 옷의 기준을 다르게 만듭니다.
옷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지면서 제 옷장에는 적지만 제 취향이 깊게 묻어나는 옷들이 걸려있습니다. 두껍고 단단한 소재의 영국식 차콜 그레이 겨울 슈트와 우아한 크림색이 매력적인 이탈리안 소재 재킷 등 하나하나에 정성이 잔뜩 들어간 옷들이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갑작스럽게 찾아온 추위에 옷장 깊숙이 있던 코트를 꺼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주 근사하고 잘 만들어진 코트'를 입고 싶다고 말입니다.
코트는 겨울에만 한정적으로 입는 옷이고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는 다운 점퍼를 입어야 하니, 자연스럽게 코트에 대한 투자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잘 만들어진 코트가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장 좋아하는 슈트 컬렉션이 나름 완성되고 이에 맞춰 코트를 입고자 하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유한 코트의 퀄리티나 디자인이 나쁘진 않지만, 누가 봐도 만듦새가 훌륭하다거나 좋은 소재를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또 완벽하게 클래식하면서 10년이 지나도 입을 만한 디자인이나 소재, 퀄리티의 코트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슈트와의 상생이 잘 되는 코트도 없었습니다.
이번 쇼핑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마흔을 넘긴 중년 남성에게 근사한 오버 코트 (재킷이나 슈트 위에 입는 코트를 클래식에서 오버 코트라 칭합니다. 지금의 오버 사이즈 코트와는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는 더 멋진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는 나름의 명분을 만들고, 다양하게 펼쳐진 코트를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옷을 고르는 조건은 이렇습니다.
- 소재가 울 100% 혹은 캐시미어와 혼용이어야 할 것
천연 소재가 주는 매력은 다양합니다. 풍부한 발색력, 부드럽고 따뜻한 터치, 따뜻한 보온성은 천연 소재의 가장 큰 매력이죠. 그중 울, 캐시미어는 겨울의 코트와 재킷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제가 옷을 고르는 기준 중 하나는 슈트는 무조건 천연 소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 특이한 소재가 아닌 이상은 가능한 천연 소재만으로 된 것을 고르는데, 이번 코트에서도 그 선택의 기준을 적용합니다.
천연 소재, 캐시미어 울로 된 코트는 오래 입어도 상품의 퀄리티가 오랫동안 유지되고, 어떤 조명을 받느냐에 따라 컬러가 다양하게 표현되어 장소에 따라 재미가 달라집니다. 합성 섬유가 섞인 소재는 시간이 지나면 합성 소재 특유의 광택이 올라오고, 퀄리티 자체는 낮아 보이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더블 브레스티드 + 피크드 라펠 이어야 할 것
예전 영화를 보면 꽤 많은 남성들이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를 입었습니다. 더블 브레스티드 디자인이 가진 남성다운 면모, 여밈을 중복으로 하면서 갖게 되는 보온성이 매력입니다. 특히 피크드 라펠 디자인까지 더해지면 날카로운 면모가 더해지는데, 이는 단단한 남성성에 샤프한 매력을 더할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조합입니다. 더블 브레스티드 + 피크드 디자인은 아주 많은 브랜드에서 나오지만, 제대로 된 디자인과 완성 퀄리티가 높은 것은 드뭅니다. 여기서 가장 많은 후보들이 탈락합니다.
- 클래식 디자인이지만 화려하지 않고, 오버 코트이며 긴 기장이지만 오버 사이즈이면 안된다.
위 제대로 된 피크드 라펠의 더블 디자인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이 조건이 참 어렵습니다. 보통 클래식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코트는 더블 브레스티드 + 피크드 디자인을 적용하면 대부분 폴로 코트 디자인으로 연결됩니다. 폴로 코트는 미국 브랜드 랄프로렌 폴로의 코트 이름이 아닌, 폴로 선수들이 힘든 날씨에도 경기를 하기 위해 따뜻한 옷을 필요로 해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아래 사진처럼 등에 인버티드 박스 플리트 라고 하는 주름과 허리에 벨트 디자인과 아래 단추 디테일과 벤트 디테일까지 디자인되어 꽤 화려한 스타일이 됩니다. 꽤 많은 브랜드의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는 폴로 코트의 디자인을 차용해서 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이런 화려한 디자인을 최대한 빼고 간결하되 구조적인 매력에 그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긴 기장이면서 오버 사이즈이지만 그 수준은 재킷, 슈트와 입었을 때 맞게 떨어지는 정도의 핏이어야 한다는 것은 사진으로 더 설명이 잘 됩니다. 저는 키가 크지 않고 날씬한 편이라 오버사이즈 아우터를 입었을 때 꽤 어려운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클래식한 슈트, 재킷을 입는 스타일에 오버사이즈 아우터는 영 그 매력이 서로 붙질 않습니다. 또 너무 옷이 길면 코트가 다른 옷들의 매력을 집어삼킵니다. 만약 긴 기장의 코트를 입고 싶다면 단추를 잠그지 않고 오픈하여 유려하게 넘실거리는 실루엣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코트의 기장은 100cm를 넘지만 110cm를 넘지 않는 그 사이가 가장 좋습니다. 무릎까지 오는 정도의 기장으로 적당히 길면서 도가 넘치지 않습니다. 10년 전이나 10년 후에도 이 정도의 기장은 어떤 평가에도 문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코트의 품은 입는 재킷, 슈트의 사이즈보다 2cm 정도가 더 많으면 적절합니다. 재킷의 어깨 길이가 44cm라면 코트는 46~47cm 정도가 좋습니다. 그렇게 가슴 품과 허리 품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입어보는 것입니다. 적정한 품을 판단하는 건 수치보다는 역시 입어보는 게 가장 확실합니다.
아래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코트의 품과 길이의 예시입니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아이템을 찾고자 꽤 오랫동안 돌아다니고 검색을 했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더 추워진 토요일 오후에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코트를 찾았습니다. '클래식 마켓'이라는 클래식 남성 브랜드의 24FW 신상품, CALDO 콜롬보 캐시미어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이 매력적인 코트는, 소재는 콜롬보 사의 캐시미어 100%를 적용했습니다. 최근 작성했던 캐시미어 재킷 (https://brunch.co.kr/@mickeyna/335) 처럼, 캐시미어 100% 코트는 그 화려함이 대단합니다. 소재에서 느껴지는 캐시미어 특유의 지블링 (지블링, 지벨라또 라고 불리며 캐시미어, 울 등 모직 표면에 물결 문양 요철감이 생기도록 가공하는 것입니다.) 아주 살짝 느껴집니다. 블랙 컬러라는 점과 화려함보다는 소재의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지블링을 최소화한 느낌입니다.
더블 브레스티드 디자인과 피크드 라펠 디자인이 더해져 남성다운 매력과 더불어 클래식한 매력이 함께 묻어납니다. 10년이 지나도 질릴 일 없는 이 간결하면서도 멋진 디자인은 어떤 겨울에도 든든한 아이템이 될 것입니다.
어깨는 마니카 카미치아 공법을 적용하여 은은한 셔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공법은 숄더패드 없이 편안하면서도 활동성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무엇보다 편안한 착용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또한 어깨의 라인이 쭉 떨어지는 느낌이 실루엣을 흐르는 듯 유려하게 만들어 줍니다.
라펠에 스티치를 깊게 눌러 박아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전체 스티치 기법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 줍니다.
무엇보다 라펠에 밀라네즈 플라워 홀은 직접 손으로 바느질하여 내구성은 물론 고급 디테일을 아는 분들에게는 꽤 매력적인 디테일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디테일과 공법은 앞서 말한 '아주 잘 만든 코트'에 부합하는 것으로 어디에서 입어도 꽤 괜찮다는 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코트를 입기까지 꽤 오랜 세월 동안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클래식이지만 화려하지 않고, 잘 만든 디테일과 공법, 거기에 좋은 소재를 함께 하는 것.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이 기준에 부합하는 멋진 코트를 올해 겨울에 만났습니다. 곧 이 멋진 코트와 함께하는 사진을 추가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올해 겨울 어떤 코트를 입으실 건가요? 자신만의 기준을 찾아 옷을 찾으러 다니는 것은 스트레스 라기보다는 꽤 즐거운 일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만의 취향과 고집을 알게 되는 것도 있고, 또 운이 좋다면 좋은 가격으로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겨울, 괜찮은 코트 하나 보러 나가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