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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 BROWNE - 꿈을 테일러 하는 남자

by Mic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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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사운즈 한남의 5층 오프레오 극장에서 익숙한 그레이 슈트에 삼선 컬러 테이핑이 눈에 띄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르지만 비슷한 유니폼 같은 슈트를 입고 서로의 옷을 칭찬하고 또 즐거워하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톰 브라운(THOM BROWNE)'의 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톰 브라운: 꿈을 테일러 하는 남자(Thom Browne - The Man Tailors Dreams)>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시대의 아이콘이 된 톰 브라운은 가장 보수적인 아이템이자 패션인 '슈트'를 독특한 비율로 재단하고 상징적이면서도 강한 규율로 만들어진 법칙을 내세워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단아였고, 시대가 지나면서 새로움이 되었으며 현재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톰 브라운의 톰브라운.

저 역시 대학교 때부터 그의 패션을 바라보며 늘 흥미로운 관심을 가졌으며, 톰 브라운의 아이템은 몇 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스타일에 명확한 포인트가 필요할 때 톰 브라운의 카디건만큼 멋지고 깔끔한 것은 없죠. 저의 롤모델 톰 포드와는 패션에서는 결이 다르지만, 패션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열정만큼은 비슷합니다. 이번 칼럼은 톰 브라운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톰 브라운, 뉴욕의 작은 슈트에서 세계 패션 아이콘이 되기까지


■ 시작: 다섯 벌의 슈트로 세운 꿈


톰 브라운(Thom Browne)의 이야기는 거창한 무대가 아닌, 작은 공간에서 출발했습니다. 2001년, 그는 뉴욕 웨스트빌리지의 아담한 쇼룸에서 단 다섯 벌의 회색 슈트만을 두고 고객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패션 시장에서 ‘슈트’는 점점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포멀과 클래식이라는 주제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단순히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짧은 기장, 좁은 어깨, 노출된 발목”이라는 독창적인 비율을 통해 기존 슈트의 질서를 흔든 것이죠. 이 실험적인 접근은 곧 뉴욕의 패션 감각 있는 층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고, 브랜드의 첫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2023_thombrowne_blainedavis_01.jpg 출처 : Pinterest / 톰브라운 자신이 입고 싶었던 슈트에서 시작된 브랜드



■ 뉴욕 패션 위크 데뷔와 급부상


2004년, 그는 뉴욕 패션 위크에서 본격적으로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선보이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당시 무대에 오른 모델들은 모두 회색 슈트를 입고, 규칙적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단조롭다고 볼 수 있는 스타일이었지만, “클래식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은 기존 디자이너들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이 대담한 시도로 그는 패션계의 떠오르는 별로 주목받게 되었고, 불과 2년 뒤인 2006년에는 CFDA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는 신생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인 성과였으며, ‘뉴욕에서 가장 혁신적인 남성복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랄프로렌과 DKNY, 톰 포드에 이어 미국을 상징하는 디자이너로 떠오르게 됩니다.

c3603ef5487b653aac86947ca0d8ee2b.jpg 출처 : Pinterest / 명확한 규칙이 있는 톰브라운의 슈트는 클래식의 재해석으로 평가됩니다.



■ 시그니처 아이콘과 실험정신


톰 브라운을 떠올릴 때 빠질 수 없는 디테일이 바로 네이비·화이트·레드가 조합된 테이프입니다. 그는 이 작은 장식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삼아, 슈트의 뒤 목이나 셔츠의 버튼 라인에 배치했습니다. 이 상징적인 디테일은 곧 ‘톰 브라운을 입었다’는 강력한 신호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작은 디테일 하나가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사람들은 톰 브라운의 회색 슈트 안에 재치 있는 디테일을 위해 옷을 구입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 디테일만 보고도 톰 브라운의 옷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남성복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2007년, 톰 브라운은 뉴욕 런웨이에서 남성 모델에게 스커트를 입혀 등장시켰습니다. 이는 단순한 파격이 아니라, “옷에 성별은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행위였고, 이후 젠더리스 패션의 흐름을 앞당긴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style_68a7d903603f9-1400x757.jpg 출처 : Vogue / 톰 브라운의 컬렉션은 독착성과 재미가 넘쳐납니다.



■ 세계 무대로의 확장과 여성복 론칭


뉴욕에서의 성공은 곧 세계 무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2009년 피렌체의 피티 우오모(Pitti Uomo)에 초청받아 첫 유럽 쇼를 선보였고, 이어 파리 패션 위크 무대까지 진출했습니다. 톰 브라운의 무대는 단순한 의상 발표회가 아니라, 연극과 설치미술을 결합한 퍼포먼스에 가까웠습니다. 회의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세트, 눈밭을 재현한 런웨이, 동화 같은 오브제를 활용한 무대는 ‘톰 브라운 쇼’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격상시켰습니다.

2011년, 그는 브랜드를 더 확장해 여성복 라인을 론칭합니다. 남성복에서 보여준 과감한 비율과 구조적 디자인은 여성복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여성 고객층 역시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이로써 톰 브라운은 단순한 실험적 디자이너가 아닌,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지닌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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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j7pxrwz-bv7q7-A6xGdWdGuRs.png 출처 : Pinterest / 톰 브라운 여성복 론칭은 그가 슈트와 남성복에 한정된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협업과 글로벌 인지도 상승


그의 업적 중 하나는 전통적인 미국 클래식 브랜드와의 협업입니다. 특히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와의 Black Fleece 라인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보수적인 슈트 브랜드’와 ‘실험적인 톰 브라운’의 만남은 예상 밖의 시너지로 이어졌고, 이는 그가 주류 패션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2018년에는 이탈리아의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Zegna)이 지분 85%를 인수하면서, 브랜드는 세계적 럭셔리 패션 하우스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거래는 약 5억 달러 규모로 평가되었으며, 톰 브라운이 단순히 실험적인 디자이너를 넘어 비즈니스적 성공까지 거둔 사례로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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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interest / 톰브라운이 몽클레어와 협업할 때 보여준 스타일은 독특하면서도 기능성을 놓치지 않는 신선한 조합이었습니다.


■ 오트쿠튀르 진출과 20주년 기념


톰 브라운의 업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3년, 브랜드 창립 20주년을 맞아 그는 파리에서 첫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슈트라는 전통적인 아이템에서 출발한 디자이너가, 결국 세계 패션의 가장 높은 무대인 오트쿠튀르까지 도달했다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같은 해 브랜드의 회고록을 담은 단행본을 출간하며, 스스로의 역사를 하나의 서사로 정리했습니다.

20주년 기념행사에서 그는 “나의 회색 슈트는 단순히 옷이 아니라, 정체성의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여정은 곧 한 디자이너의 성공담을 넘어, 패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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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WD / 톰브라운 오뜨 뀌띄르의 착장, 그의 디자인 세계관이 풍요롭게 보여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V6oWScmW0M





톰 브라운은 작은 회색 슈트에서 시작해, 패션 업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상을 받고 협업을 성공시킨 기록만이 아닙니다. 그는 클래식 슈트의 언어를 새롭게 번역한 사람, 젠더와 규범의 경계를 허문 사람, 그리고 패션을 하나의 예술적 서사로 끌어올린 사람입니다.

결국 그의 역사는 단순히 브랜드의 연대기가 아니라, 패션이 어떻게 사회와 문화 속에서 확장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톰 브라운의 카디건을 꺼내 다가오는 가을을 만나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톰 브라운을 만나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번 가을에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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