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핑크, 그 유연하고도 단단한 권위에 대하여

무채색의 성벽을 허무는 가장 우아한 도구

by Mickey




남성복의 세계는 오랫동안 견고한 성벽과 같았습니다. 네이비, 그레이, 블랙으로 대변되는 무채색의 문법은 신뢰와 권위의 상징이었고,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은 일종의 모험으로 간주되었죠. 특히 '핑크(Pink)'라는 색상은 남성들에게 늘 금기시되거나,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색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성복 MD로 일하며 제가 목격한 가장 세련된 남성들은, 역설적이게도 이 핑크를 가장 잘 다룰 줄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핑크는 자극적인 형광빛의 그것이 아닙니다. 잘 익은 복숭아의 속살 같은 피치 핑크, 혹은 오랜 시간 햇볕에 바랜 듯한 빈티지한 더스티 핑크를 말합니다. 이런 색상이 묵직한 네이비 재킷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밀 때, 스타일에는 '여유'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깃듭니다. 또한 남다른 센스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핑크를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일종의 '태도(Attitude)'입니다. 랄프 로렌의 런웨이에서 모델들이 핑크색 리넨 셔츠의 소매를 무심하게 걷어 올린 채 걷는 모습이 우아해 보이는 이유는, 그 색감이 주는 부드러움이 남성의 강인한 실루엣과 만났을 때 생기는 묘한 긴장감 때문입니다. 이 조합은 특히 단단하게 조여진 슈트 안에서 더 매력적인 포인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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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핵심은 '아이템'입니다. 온몸으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이너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데, 재킷 혹은 다른 아우터와 함께 입어 컬러가 가진 센스를 적절하게 표현합니다.

재킷과 입을 때는 셔츠가 좋습니다. 특히 포멀 한 슈트에 핑크 컬러 코튼 셔츠는 포멀 웨어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타이까지 함께 한다면 핑크로 주는 포인트가 더 극대화됩니다.

여름이라면 리넨 셔츠로 표현하는 것도 좋습니다. 리넨 소재가 가진 발색의 힘은 그 어떤 소재보다 더 강합니다. 부드러운 핑크 빛의 리넨 셔츠에 화이트 팬츠, 그리고 네이비 재킷이라면 여름에 만들 수 있는 스타일 중 가장 화려한 조합일 겁니다.


셔츠보다 더 부드러운 걸 추천한다면 역시 니트입니다. 셔츠와 다르게 캐주얼한 스타일에 더 잘 어울리면서 한편으로 컬러를 화사하고 부드럽게 표현하기 좋습니다. 얇은 소재보다는 조금 더 두께가 있는 것이 좋은데 이는 포근한 느낌을 표현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특히 카디건을 고를 때 두께가 있는 소재를 골라 화이트 티셔셔츠 하나와 함께 한다면 최소한의 스타일링으로 매력적인 컬러 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얇은 하이게이지 니트라면 셔츠와 함께 할 때 꽤 매력적인 조합이 됩니다. 네이비, 그레이 같은 다소 뻔한 조합보다 훨씬 포인트 되고 생동감 있는 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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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남성분들은 핑크를 어려워할 겁니다. 익숙지 않아서죠. 그렇다면 처음에는 아주 작은 부분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타이의 패턴 속에 섞인 작은 분홍빛 점, 혹은 양말이나 포켓치프 같은 사소한 디테일에서부터 말이죠. 그러다 점차 셔츠로, 그다음엔 니트로 그 영역을 넓혀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인상이 훨씬 밝고 입체적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강함은 때로 부드러움에서 나옵니다. 무채색의 갑옷을 잠시 벗어던지고 핑크라는 유연한 무기를 장착해 보세요. 세련된 남자의 옷장엔 반드시 핑크가 있다는 말, 그것은 취향의 확장인 동시에 당신이라는 브랜드의 깊이를 더하는 가장 우아한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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