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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ey Aug 23. 2015

로퍼, 로퍼, 나의 로퍼

남자의 발을 근사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아이템, 로퍼


 재킷 입기가 낮에는 조금 무리라고 느껴지는 시기가 오면 신발장에서 로퍼를 꺼낸다. 태슬 로퍼, 페니 로퍼 등 다양한 로퍼를 하나씩 꺼내서는 구둣솔로 쓱쓱 먼지를 털어낸다. 현관문 옆에 나란히 진열해놓으면 맨발에 신을 로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나에게 로퍼는, 특히 맨발에 로퍼는 들뜬 여름밤을 떠올리게 한다.


출처 : StreetFsn

 여름에는 옷을 느슨하게 입는다. 셔츠는 단추를 두 개 정도는 풀어주고 소매는 커프스를 꺾어 올린다. (여름에도 반팔 셔츠는 입지 않고 긴팔을 접어 입는 편이다.) 밑단이 복숭아 뼈까지만 오는 바지를 입고 마지막에는 로퍼를 신는다. 로퍼의 컬러가 어두워도 발목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하다. 살짝 여유 있는 사이즈의 로퍼를 신어주면 운동화나 샌들보다 적당히 멋 부리면서 센스가 있어 보여 좋다. 샌들은 시원하고 멋지지만 발을 너무 드러낸다는 점에서 살짝 부담스럽고 (혹은 조금은 격이 떨어져 보인다거나), 운동화는 너무 캐주얼해 보인다. 재킷을 벗은 것만으로도 캐주얼함이 한층 드러난 룩에 운동화보다는 로퍼를 신음으로써 약간의 드레쉬함을 다시 찾는 것이다.


 여름에도 가끔은 온도가 낮은 날이 있다. 비가 심하게 온 날이라던가 혹은 안개가 잔뜩 낀, 또는 쌀쌀한 초여름이나 늦여름에는 더블 슈트에 로퍼를 신는다. 포멀 한 더블 슈트와 로퍼의 조합은 의외로 신선하다. 발목을 드러내었지만 격이 떨어지진 않고, 더블 슈트이지만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난다. 그럴 때 입는 더블 슈트는 행거 치프는 하지 않고 이너는 주름이 간 셔츠나 티셔츠를 입는다. 컬러가 어떤 것이던 간에 이 조합은 여름 밤 무리 없이 멋내기 좋은 조합이다.


 로퍼의 매력 중 하나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한 시즌 지나버리면 다시 입기가 영 거부감이 드는 것들과는 달리, 슈트와 마찬가지로 몇 년이 지나도 신을 수 있다. 물론 컬러가 튄다거나 디자인이 독특하다면 이 또한 트렌드에 영향을 받겠지만, 보통의 로퍼는 기존의 디자인을 꾸준히 이어나가기 때문에 딱히 트렌드라 할 것이 없다. 구입할 때는 특별하게 튀거나 하진 않지만 신다 보면 내 발에 맞게 가죽이 늘어나고 점점 나와 닮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 신는 로퍼를 잘 관리한다면 20년 후에도 신을 수 있는 것이 구두, 특히 로퍼의 특징이다. 그래서 난 4년 전에 산 로퍼들을 여전히 신고 있다. 관리를 썩 잘한 건 아니지만, 로퍼를 신고서 무리하게 많이 걷거나 하지 않다 보니 형태가 틀어지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다.


 대게 내가 가지고 있는 로퍼는 블랙이다. 블랙에 소가죽. 가장 기본 소재에 태슬, 페니 등의 디자인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컬러와 소재의 로퍼를 구입하고 싶다. 특히 최근에 가장 신어보고 싶은 건 4~5년 전에 랑방에서 나온 네온 컬러의 로퍼다. 컬러가 튀어서 심심한 룩에 마무리 포인트 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특히 블랙  슈트뿐 아니라 베이지 면팬츠나 진에도 잘 어울려 튀는 색깔에 비해 활용도가 높다.


 슈트를 입기 어려워지는 여름을 견딜 수 있는 건 로퍼 덕분이다. 맨발의 경쾌함은 운동화와는 사뭇 다르다. 디자인에 따라 단정함을 보여줄 수 도 있고 드레시함을 보여줄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간에, 로퍼는 내 여름을 기분 좋게 해줄 가장 아끼는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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