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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ySong Aug 10. 2023

만족과 걱정, 그 사이

Port Elizabeth - South Africa

남아공에 있었던 3개월은, 지금도 돌아보면, 아마 내가 머물렀던 그 어떤 곳보다 환경적으로 만족도가 높았던 곳이었다. 일단 더위에 취약한 나에게 시원한 바람과 긴 팔을 입을 수 있는 기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너스 포인트가 있었는데, 말이 통하고, 음식과 문화가 다양하니 여러모로 만족도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아프리카의 유럽이라고도 불린다고) 

지금도 간혹 사람들이 어디를 다시 가고 싶냐고 종종 물어들 보는데, 나는 그때마다 주저 없이 남아공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글을 쓰는 오늘 이 시점에도 누군가가 물어봤었고, 그때도 역시 남아공이라고 대답했었다)

(회상하면 할수록, 다시 가고 싶은 곳. 보고 싶네여 R과 B, 나의 김치를 사랑해 줬던 그들)


쌀쌀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와 출퇴근이 정해져 있는 일정한 루틴, Fresh milk와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아침부터가 일단 마음에 들었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는 남대서양과 인도양 즈음 어딘가가 보이고, 언덕에 자리한 1층 단독주택이었다. 그 집 앞마당에 미니 동물원이 있었고, 집 앞에 있는 그네가 약간 남서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노을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시간은 별로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해 질 녘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침엔 조금 회색빛이 감싸는 풍경이었고, 해 질 녘엔 따뜻한 오렌지 빛이 감도는 풍경이었다.

가젤이었나... 이 녀석들은, R의 말에 따르면 아주 예민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애들
눈 뜨면 얼룩말 엉덩이가 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보다 더 자연친화적이고 여유로울 수가...!!!
지금 봐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풍경
가까이 갈 수 없어, 차 안에서 멀찍이 떨어져 찍은 미니 동물원


그러나, 제일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치안이었다.

이 집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경계선에 철조망이 있었는데, 살아보고 물어보고 경험해 봤을 땐, 이런 이유들이 있었다. 일단 첫 번째로 동물들이 도망가지 않아야 한다. R은 여기 앞마당(? 이라고 쓸 때마다 앞마당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크기와 맞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이지만, 딱히 대체할 단어도 없기에 앞마당이라고 계속 쓰기로 한다)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매우 아꼈다. 사진에 있는 녀석들 외에도 몇몇 동물들이 더 있었는데, (개인 소유로 있는) 이 녀석들이 담장을 넘어 탈출이라도 하면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르와 별 반 다를 거 없는 상황이 펼쳐지기에, 그리고 탈출을 한 뒤 동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에 담장이 있었다.


또 하나 큰 이유는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지금은 많이 알려진 한국의 치안과 다른 나라의 치안을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남아공은 치안이 아주 안 좋다고 들었다. 내가 피부에 와닿게 실질로 경험한 적은 없으나,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 철조망은 그저 무늬로만 세워둔 것은 아니었고, 실제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으로 차, 사람 할 것 없이 닿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R은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래서 차가 진출입하는 곳은 커버 사진과 같은 철문이 있었고, 그 문은 차 안에서 리모컨으로만 열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어느 정도 차가 가까이 가면 자동 센서가 작동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정도의 최첨단까지는 바라지 않는 것 같다. 또 모르지, 지금쯤 다시 가면 자동 센서가 있을지도.)


그 리모컨은 컵홀더 등 차 안에 늘 비치되어야 있어야 하고, 리모컨이 없다면 갇히거나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피부에 와닿게 치안의 정도를 경험한 적이 없다고 해도, 매일 아침마다 리모컨을 누르고 철문을 열 때, 나에게 이 나라의 치안을 상기시키기엔 충분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온 지금은 좋은 기억들만 남아서 그런지, 만족과 걱정 그 사이라고 한다는 것도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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