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제주도 여행

1부 시작하며 - 2022.03 제주도

by micn


옥색?


쪽빛?


색 하나로 지금 이 바다색을 부를 수 있을까?

밝은 채도와 깊은 투명도, 작은 햇살과 몽돌들이 섞어 만들어낸 이 색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나.


설명이 가능한 색이 있는 걸까? 꽤 나 바다만 바라봤을 때 일전에 화첩 기행에서 읽은 일화가 생각났다.

화첩 기행의 작가인 김명종 님은 튀니지의 푸른 바다 앞에서 감탄 일색이었다 한다.

화가이자 교수인 그는 이미 튀니지언 블루란 파란색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색을 충분히 예상한 바였지만, 실제 눈 앞에 펼쳐진 바다에

말 그대로 입을 벌린 채로 감탄만 했단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 튀니지의 바다는 김명종 님을 꾸짖었다 한다.


“이게 진짜 튀니지언 블루야.”


작가는 자연색에 감탄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정 아름다운 색은 자연만이 가지고 있음을 작가와 공감할 수 있는 시점에 서 있는 나였다.

아름다운 이 자연색을 감히 김녕 블루라고 부르려 하지만 그조차 이 색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옥빛, 쪽빛이 어우러진 색. 비친 햇살에 투명하고, 비치는 몽돌에 빛나는 색이다.

부서지는 바람마저 색이 되어 파도로 그려지고 있는 바다.

한 단어로 표현 못해 나열해 버렸다.

단어들을 줄 세워도 표현하지 못한 이 아름다운 바다를 그저 사진만 찍어 대고 있었다.


이번에 나는 제주도로 여행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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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지를 추천하라 하면 단연코 목포를 추천한다.

제주도는 모두가 알고 있는 정답이라 생각한다.

그에 비해 목포는 나만의 비법이라 생각한다.

짙은 바다 내음처럼 배어 있는 목포의 수수함과

곳곳에 숨어 있는 색채 높은 매력은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다.

다만 시간적 문제로 맛있는 모든 걸 포기 당하고 바로 배에 차를 실었다.

일정 때문에 맛있는 목포를 눈앞에 두고 떠났다니.

출발하는 배 위에서 한 점도 못 먹은 목포만을 그리워했다.

갑판 위 목포 예찬을 마치고, 테라스에서 친구들과 맥주 한 잔 마셨다.

미안하게 한 모금에 목포가 잊혔다.

시원한 탄산이 목을 긁어갈 때.


싹.


한 번에 지워졌다.

역시 비법보다 정답이다.


맥주로 백지가 된 내 머리에 정답 제주를 써 내려갔다.

타고 온 목포의 페리 선은 7, 8층 건물 높이로 크기가 굉장했다. 굉장한 크기의 배가 현대 기술의 축복으로

5시간이면 제주항에 도착한다. 문득 옛사람들은 어떻게 배를 타고 제주를 갔는지 궁금해졌다. 하루는 족히

결렸을 것 같지만 바람 좋은 날에는 10시간이지만 보통은 이틀이었다. 배 위에서 잠을 잘 수 없으니 중간에

추자도나 청산도에서 1박을 하고 다시 출발하는 형태로 풍랑을 대비해

4, 5척의 배가 함께 다녔고 한 척에 30, 40명 정도 인원이 타고 다녔다 한다.


고립된 섬인 줄 알았던 제주 섬은 이틀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가까운 건 육지 사람들만의 이야기였다.

조선시대 제주도민들은 이틀이라는 시간의 문제 전에 다른 문제로 본토에 발을 밟을 수가 없었다.


출륙 금지령.


육지의 명령으로 제주도민은 본토를 밟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여자라는 제약을 이겨내고 제주의 귤과 미역 등을 육지의 옷감과 장신구로 거래하며 거상이 있었다.

때는 1793년, 정조 시절 제주도의 세 고을에서 600명이 아사할 정도로 거듭된 흉년이 계속되자

조정에서 2 만섬의 구호식량을 보낸다.

하지만 수송 선박이 침몰하면서 구호 작전은 실패되었다.


이때 한 거상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쌀을 거두어 굶주린 제주를 구원하였다.

정조가 그 소식에 그녀에게 소원을 물어보고 한양의 궁궐을 보고 금강산을 보고 싶다 답을 받았다.

거상의 이름은 김만덕이며 제주는 아직도 그녀를 의녀로 부르고 있다.

검소한 의인조차 꿈꾸었던 육지에 대한 작은 소망.


그들이 이 바다를 보면서 육지를 염원했을 거란 생각에 미안함, 감사함이 내 맘속에 뒤섞인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슬픔이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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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카메라를 내리고 구좌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제주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오름은 동네 뒷동산 정도로 생각했다.

이런 안일한 생각이기에 한라산 대신하는 오름 일정을 걱정 안 했다.


산만 아니면 되니까.


제주도에는 산이 1개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작성되는 일정을 편히 바라봤다.

대한민국 산림청 기준으로 제주도에는 55개의 산이 있다. “산, 봉, 대”로 끝나는 자연 지명 혹은

비고 200m 이상 높이의 오름을 산으로 분류했다 한다. 성산일출봉 또한 봉으로 끝나니 산으로 취급한다.

한라산만 산으로 알았던 나는 산만 아니면 괜찮다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 두 곳의 오름, 오름이라는 이름의 두 곳의 산에 올랐다.


지미 오름과 노꼬메 오름이다.


지미 오름은 인생 첫 오름이다. 다만 첫 오름의 감동은 없었다.

오름은 뒷동산으로 생각한 오름에 대한 나약한 인식을 연속된 계단으로 단단하게 기강 잡았다.

기강 잡힌 나는 이후 말미 오름에 오를 때 주차장에서 온갖 정신을 무장 하고 나서 등반에 임했다.

말미 오름이야 말로 동산이었는데 말이다.


자비 없는 오르막길을 맛보고 나면 누구나 입에 그 단어를 달고 있다.

땅의 꼬리, 땅 지(地), 꼬리 미(尾).


지미봉의 이름이 오르막 곳곳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나 또한 숨 차오르는 와중에도 그 단어는 끊기질 않는다.


정상이다.

정상의 기쁨에도 맛깔나게 그 단어가 입에 감긴다.

정상에 도달했을 때 풍경보다 의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날쌔게 앉아 한동안은 바닥의 흙만 쳐다보며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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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꼬메 오름은 작년 목포의 해상 케이블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목포대교의 야경을 찍고 돌아가는

케이블카에서 제주에서 왔다는 분들의 일행분들과 같이 탔다.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서로 목포로 여행을

온 이야기를 나눴다. 문득 제주분이 노꼬메 오름을 추천하였다.

다른 오름들도 다녀봤지만 노꼬메 오름 만큼의 감동이 없단다.

매해 한 번씩은 오른단다. 기회 되면 가보라 했다.

인상 좋고 재밌는 말도 많이 해 주신 그분의 추억을 믿고 이번에 찾게 된 것이다.

노꼬메 오름은 입구에 제주 전통 묘지가 있고 노루들이 뛰어다니고 있다. 굴러다니는 똥들로 여기가 맞는지

한참을 헤매었다. 다음날 비 예보가 있는 상태에서 구름 들이 점점 몰려오고,

시간도 늦은 오후이기에 해가 지기 전에 정상에 오르고자 걸음을 재촉했다.


노꼬메는 제주 방언으로 높은 뫼. 높은 산이란 뜻의 오름이다.

큰 노꼬메와 작은 노꼬메가 있는데 우리는 큰 노꼬메를 올랐다.

지미 오름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각오하고 올랐다. 능선까지 나 있어 정말 산이구나 생각이 들게 한다.

기나긴 오르막이 끝나고 나오는 능선에서는 고생의 보람을 다 얻을 수 있다.

나무로 된 숲길 끝에는 억새들이

펼쳐져 있고, 억새 너머로 펼쳐진 거대한 숲과 그리고 저 멀리 한라산이 서 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감탄사가 나왔다.

이름 모를 오름들에 보호받고 있는 왕과 같은 위엄으로 한라산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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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에 사진만 찍으며 정상으로의 걸음을 재촉했다.

슬프게도 지미 오름과 노꼬메 오름의 정상들은 정복의 기쁨은 너무 컸지만, 풍경의 재미는 보지 못했다.

정상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카메라를 짊어지고 올라간 보람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번 제주도 완벽하지 않아서 좋다.

불완전이 다음이란 단어를 완성 시킬 것이다.

목포에서 시작한 노꼬메의 이야기를 완성 시킨 것도 이번 여행의 나름의 성과다.

염원에는 아름다움이 있었고, 미련에는 추억이 있었다.

다녀온 사진들을 정리하며 다시 한번 제주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다.


아름다움 추억을 정리할 수 있게

이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는 일상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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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5.


화려한 제주도를 다시 그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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