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퐁당 Aug 22. 2024

빈번한 바람

‘동조자’와 함께.


.......‘빈번한 바람’이라는 작전명을 보십시오.


K가 읽기를 멈추고 i에게 말했다. “빈번한 바람이래.ㅎㅎㅎ 작전명이. 빈번!"

i가 말했다. “많다는 건가? 바람이?”

“응 잦다는 말이야. 근데 그게 작전명이래. 차라리 ‘한번에 끝냄’이라고 하지. ㅎㅎ"

i가 말했다. “그러게. ‘최후의 일격’이나.ㅎㅎ”

K는 계속해서 이북 화면을 보고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를 읽었다.


그야말로 또다른 혼란을 미리 암시한 혼란이지요. 나는 1년 동안 이 작전명을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직무상 과실로, 아니면 최소한 문학적 상상력의 범죄적 실패 사례로 미국 정부를 고소할 수 있을지를 궁금해 하면서요.


K가 또 읽기를 멈추고 i에게 말했다.

“헐.. 이 사람 또 1년 동안이나 곰곰이 생각했대. ㅎㅎㅎ 넘 웃겨. 무슨 1년이나 고소를 생각하냐고! 그리고 이사람 문장, 긴데 괜찮네!!"

i도 공감하며 말했다. “응 재밌어. ㅎㅎ"


단단히 맞물린 양쪽 엉덩이 사이에서 ‘빈번한 바람’이라는 작전명을 쥐어 짜낸 군 지휘관은 누구였을까요?


K가 말했다. “이거 봐. 이렇게 재밌게 비꼬기도 힘들어.ㅎㅎㅎㅎ”

i가 말했다. “ㅋㅋㅋㅋㅋ방귀네!!"

K는 다음 문장을 눈으로 보며 말했다.“뭐라고 방귀? ㅎㅎㅎ 단단히 맞물린 양쪽 엉덩이… 빈번한 바람 ㅎㅎㅎ 그러네. ㅎㅎㅎㅎ 오!! 근데 다음은 더. 웃. 겨!!!! ㅎㅎㅎㅎㅎ"


역사에 무관심하고 어린애 같은 사람들에게는 방귀 현상을 생각나게 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느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르지 않았던 걸까요?


K와 I는 서로를 쳐다보며 한바탕 배꼽 잡게 웃었다.

K는 뉘앙스에 미숙함의 뜻이  담기지 않게 느끼기를 바라면서 다음 단어들을 말했다.

“너잖아. 어린애 같은 사람이 아니라 어린이! 역사에 무관심하진 않은ㅎㅎ“

i가 다음을 읽어달라고 졸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연쇄 반응과 그로인한 빈발로 이어질 수 있는 방귀 현상 말입니다.


K가 말했다. “빈발이 정확히 뭘까? 빈번과 비슷할거 같은데?"

“발은 뭔가 폭발할거 같은데?"라고 i가 말했다. K는 과연 산탄총을 설명할 줄 아는 i 답다고 생각했다.

둘은 빈발의 한자를 검색한 후 다시 동조자로 돌아갔다.


아니면 예의 군 지휘관이 근엄한 얼굴로 비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어쩌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도 않고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본 적도 없는 내 동포들의 눈엣가시로 삼으려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골랐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충분히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걸까요? 비꼬기 좋아하는 이 미지의 인물은 미국 헬기들이 돌진하며 만들어 낸 온갖 질 나쁜 공기가 뒤에 남겨진 사람들 면전에는 대규모 가스 폭발과 맞먹는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없었을까요?


K와 I는 ‘질 나쁜 공기’, ’면전에‘, ‘대규모’, ‘가스 폭발’ 등의 단어에 ‘빈번한 바람’을 소환해 함께 동조하며 웃었다.


어리석음과 반어법을 저울질해 본 후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나마 반어법이 미국인들에게 마지막 한 조각 품위를 부여했으니까요. 오직 그것만이 우리에게 닥쳤던, 아니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가 자초했던 비극에서 건져 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비극의 문제점은 희극과는 달리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뇌리를, 그중에서도 이제 막 사업에 착수한 장군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K와 I는 ‘전자와 후자’ ‘반어법’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장군이 다시 등장함에 석연치 않음을 느끼며 동조자가 되었다.


우리한테 밀고자가 있어요. 스파이요.


i가 눈을 둥그렇게 뜨는것이 느껴졌다. “어떡해...!”

K는 계속 읽었다.


둘 다 나를 바라봤습니다. 마치 확인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요. 나는 내 위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태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장군이 이름 하나를 거명했는데,


i는 숨죽이며 동조자의 다음 행에 귀기울였다.

      

바로 무절제한 소령이었습니다.      
내 위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K는 안도하며 시계방향 문장을 한 단어씩 천천히 읽었다. 위가 방향을 막 바꾸는 건 쉽게 동조하기 어려운 현상이었지만 그래도 스파이임을 들키는 것보다는 나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엄마가 넘 졸려서...“

K와 i는 잠을 청했다.


“재밌다.” K가 말했다.

“응.”

i도 동조했다.


잠이 들 때까지, i의 ‘엉덩이에서의 빈번한 바람쇼‘가 한번 있었고, 둘은 깔깔대고 웃으며 그럭저럭 잠을 잤다.




- 이 글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동조자>를 본 K가 (물론 아직도 시리즈를 다 보진 않았지만) 원작소설을 이북으로 다운받아 읽던 중,  아직도 자기 전에 엄마와 뭔가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i (말그대로 아이ㅎㅎ)를 동조자 삼아 소설을 읽어주는 이야기이다. K는 이 작은 동조자가 언젠가 큰 동조자가 되어, 혹은 동조를 그만둘 시점이 오는 그 때까지 이러한 동조자의 시절을 잊지 않길 바라며... 까지 쓰다가 다시 생각했다. ㅎㅎ 뭘 더 바래? 그저 이 시간을 이렇게 만끽하면 되었지. 혹여 이런 알콩달콩한 시간이 우리의 기억에 더이상 남아있지 않는 때가 온다고 해도 화양연화...까지 쓰다가 또 멈췄다. 화양연화라고 수식할 필요도 없지. 그저 이 시간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K는 그렇게 지나친 수식도 필요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굳이 이 시간을 기억 못할수도 있는 미래를 불러와 무마시키기라도 하듯 이 시간을 완성하려 애썼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소설 <동조자>를 읽는 즐거움을 언급하는 것 역시 빼놓지 않으며, 작가의 긴 문장을 함께 탐색하다가도 빈번한 바람으로 인한 행간의 냄새를 같이 맡기도 하는 i같은 동조자가 있음에 뿌듯해하고 감사하며 말이다. 짧고 간결한 것도 좋지만, 길고도 재밌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 것인가!




#동조자 #비엣타인응우옌 #박찬욱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최소한의 드로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