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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Oct 03. 2024

은희에게

- 왕희지의 슬픔, 그 너머에게 -

정일이는 정어리가 되고

은희이모는 은어가 되어

깊은 바닷속에 살고 싶다.  


이 시를, 은희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어.


오늘 아침, 옛 그림을 보다 문득 떠오른 은희에게.

아마도 너는 지금 없을 테지, 너는.

우리가 한때 지나온 시절을 불러올 때에만 내 옆에 자리해.

시간이 하나의 곧은 선이 아니라면

여기에 미래라고 부르는 순간들을 가져올 수 있고

과거 역시 그러하다면

무수한 나와 너들은 어느 한 곳에서 만나 언제고  얼굴을 맞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만나 부르는 우리의 노래는 참 아름다울 거야.

아름답다는 말로도 부족한, 이미 알고 있지만 알 수 없는

기묘한 것일 거야. 그렇지만 생생할 거야. 살아 있을 거야.


언젠가 네가 준 왕희지의 난정집서의 문구에

"옛말에 살고 죽는 일이란 대사라 했거늘, 어찌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을까? 매양 고인들의 감개를 읽을 때마다 우리 또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나니. 그들의 글에 탄성을 연발하는 동안 저절로 죽음을 깨닫는다.

분명 삶과 죽음은 허망한 몸짓, 팽조처럼 팔백 년을 장수하는 것도, 어린 소년이 요절하는 것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 과거를 돌아보아도 고인이 보이지 않듯 멋 뒷날 현재를 아무리 뒤돌아보아도 지금 사람은 보이지 않을지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그들의 시를 적는다. 비록 사람마다 경우는 다를지라도 그 슬픈 까닭은 같을지니, 뒷날 누가 있어 이를 읽거든 장차 무언가 느낄지어다."


그 뒷날이 바로 오늘인 거야.

왕희지의 아름다운 슬픔을 존중하지만, 왠지 슬픔 너머를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구나.


이렇게 내가 있는 '뒷날'을 지금 만났고, 너의 손을 잡았어.

이런 사연의 병풍을 두르고 시작해 보자.

슬픔이라면 슬픔,

그 너머라면 그 너머를 말야.

귀를 열고, 하나도 아닌 시답잖은 두 눈을 감고 느껴보자.

이건 판소리이고 마당극이야. 제4의 벽 같은 건 없어.

아마도 춤을 추게 될 거야. 그 누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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