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결핍, 억압과 분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사랑의 이해'
올해 독서모임에서도 가장 많이 본 책은 '부의 추월차선'이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부의 추구에 대해 행복이라는 접근 동기라기보다, 어떠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피동기가 있는 건 아닐까. 최근에 본 '재벌집 막내아들'과 '사랑의 이해'에서는 가난에 대한 회피동기를 찾을 수 있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분출되는 억압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2022) 1화에서는 가난한 집의 장남 최현우가 나온다. 중년이 된 그는 재벌 가의 비서로 나오는데, 그는 마치 명령을 수행하는 로봇 같다. 그의 개인적인 감정은 억제되어 있고 그로 인해 자리를 지킨다. 골프채에 머리를 맞고도 묵묵히 말을 전하며, 감정에 휘둘리는 재벌 2세를 설득시킨다. 최현우가 감정의 억제하는 습관은 가난을 체화하면서 얻은 습관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최현우가 재벌집의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환생하는 것은 감정이 억압된 삶에서 벗어나는 욕망의 투영이다. 진도준이 된 최현우는 진양철 회장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재벌 가의 비서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이 되려는 욕망은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입장에서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진도준이 된 최현우의 두 번째 이유는 인정에 대한 욕구충족이다. 같은 능력의 결과가 최현우일 때는 먼지가 되어 삶을 부정당했지만, 진도준이 되어서는 인정받는 것이다.
최현우처럼 직장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억압하며 노오력 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들을 맞이하는 이 시대 누구나의 순간들일 것이다. 따라서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판타지마저 박탈당한 결말은 한 달간의 바캉스 같던 진도준의 삶을 뒤로하고 월요일 아침 다시 출근해야 하는 최현우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랑의 이해'에서 승화되는 억압
재벌집 막내아들이 현실의 잠재된 욕구를 판타지로 일순간 분출하는 것이라면, 비슷한 시기 방영된 '사랑의 이해'는 잠재된 욕구를 더 억압함으로써 승화시키려 한다. 사랑 앞에서까지 각자의 감정을 억압하는 두 남녀를 보여준다. 그들이 사랑 앞에서 망설이는 것은 최현우처럼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하상수는 홀어머니와의 둘이서 가난을 짊어졌고, 안수영 또한 그림을 포기하고 일찍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일하고 사랑이 싹트는 배경 또한 은행인데, 은행은 오차 없는 화폐의 출납이 이루어한다는 점에서 감정이 필요치 않는 장소일 것이다. 안수영과의 데이트 약속이 있는 날마다 하상수의 출납금이 맞지 않는 건 우연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
현실을 반영하는 KCU 은행에서 감정의 억압은 가난할수록, 직급이 낮을수록 심해진다. 육지부장은 안수영에게 무례와 희롱을 넘나들고, 이 팀장은 매회마다 직원들에게 거만하게 군다.
안수영은 뚜렷한 성과들을 내지만, 육 지부장의 심해지는 갑질에 대해 안수영의 삶은 휘청거린다. 최현우가 그랬듯이 상사의 갑질에 의해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게 된 안수영이 할 수 있는 건, 다시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다. 물론 은행의 직원들이 드라마틱하게 연대함으로써, 안수영을 더 이상의 코너로는 몰지는 않는다.
매회마다 서 팀장은 이 팀장의 무례한 말들을 유머 있게 지적하며, 직원들을 변호했다. 그리고 내내 방관자 역할을 자처하던 마대리와 배계장도, 육지부장에 대한 감사가 나왔을 때는 안수영을 돕는다. 둘은 더 이상의 방관을 멈추면서, 육지부장의 갑질을 멈춘다.
'사랑의 이해'는 종국에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억압을 절제라는 덕목으로 보이게 한다. 마치 그것은 사랑처럼 보인다. 박미경은 좌절당한 사랑의 끝에서도 분노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안수영의 아버지 또한 하나의 비밀을 간직한 채 자식에게 홀대당하는 죄인이 된다. 비로소 타인의 감정을 억압하는 일과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일의 차이는 폭력과 사랑만큼의 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돈과 직급을 갖게 되면, 자신을 억압하는 것보다 타인을 억압하는 일이 더 쉬워지는 듯하다. 그렇게 시스템의 관리자가 되어 타인을 착취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할 수도 있다. 내로남불 같은 태도로 자신에게 취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도가 넘을 때, 그것을 멈출만한 장치는 사회 곳곳에 필요해 보인다. 육지부장과 안수영의 상하관계에서처럼 누군가의 무분별한 날갯짓이 누군가에게는 폭풍처럼 다가오는 나비효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억압당하다 위기에 몰리는 '최현우'나 '안수영'만 아니면 되는 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