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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렌지 Feb 28. 2022

심쿵하는 쓸쓸함

예능 '하트시그널'


 호감 가는 이성의 마음이 궁금한 동료가 그 사람과의 메시지를 보여준 적이 있다. 순식간에 진지해졌던 순간이다. '내'가 발견하는 단서가 관계의 미로를 헤쳐나가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 때, '할 수 있다'로 시동 걸린 두 뇌를 굴리며 활자 너머의 상대 마음을 읽어보려 애썼다. 마치 도박장에서 상대패를 읽으려는 사람처럼 상대의 포커페이스 너머 균열을 보려 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는 안간힘을 써도 나오지 않을 때의 화장실 일과 비슷했다.

    


 도박장을 제외하면,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 간절한 순간은 그와 연애를 생각할 때가 아닐까. 설렘의 불확실성을 느낄 때, 말초적인 호기심은 발동된다. 몇 년간 이를 자극하는 소개팅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연애와 결혼을 추구하는 남녀들을 한 공간에서 살게 하는 짝짓기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호감을 숨겼다가 어느 순간에 마음을 표현하고, 시청자는 남녀들의 마음을 추리하고 해석한다. 처음 만나는 8인의 남녀가 한 집에서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신뢰를 출연자의 사회적 지위와 집안 사방의 카메라로 손쉽게 구축한다.



 출연자들을 향하는 수많은 소형 카메라그들이 큐피드의 화살을 쏘고, 맞는 순간들을 보여다. 마치 흰 종이를 색칠해 가려져있던 동전의 입체를 보여주는 것 같은 순간다. 구애의 순간, 공작새는 날개깃털을 힘껏 피고, 매미는 숲이 울릴 듯이 울고, 단독 생활하는 고슴도치도 삐약삐약 소리를 낸다는데, 출연자들은 공작새처럼 화려해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인처럼 섬세해지고, 철학자처럼 깊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나 사랑을 얻으려 할 때는 안간힘을 쓰며 자신만의 날개를 펼치지 않을까. 이전에는 펼쳐본 적 없는 방법으로도.



 심쿵, 예측 못한 설렘으로 심장이 갈비뼈를 다치게 할 만큼 쿵하고 뛰는 것을 뜻하는 말이 생겼고, 심쿵의 장면에서 많은 이들은 열광했다. 심쿵의 시초로 기억하는 건 드라마 '킬미힐미(2015)' 속 배우 지성의 행동이다. 그가 여주인공을 먼저 차에 태우는 장면에서, 그녀의 머리가 차에 부딪히지 않게 그녀의 머리를 보호하며 태운 장면은 보살핌에 대해 이해한 순간이었다. 이는 실제 와이프에게 하는 행동이라고 하는데,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이러한 장면을 생산해 내기 용이한 듯하다.



  물론 자신만의 색깔로 구애하는 설렘의 심쿵도 있었지만, 말하고 싶은 건 출연자의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심쿵이다. 남녀 8명 모두가 커플이 되는 경우를 확률적으로만 따지면 사실 1/(24*24) = 0.17%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사람을 두고 하는 경쟁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한 손에는 저울,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대중 앞에서 하는 경쟁이다. 그렇기에 어디에서보다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우애도 있어 보여야 한다. 하지만 남녀 8명이 한 달간 같이 생활할 때는 설렘과는 반대급부의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출연자는 같은 공간에서 호감을 쌓아간 상대에 진심을 전하지만, 상대의 암묵적인 비동의로 다시 빠져나온다. 뿐만 아니라 짝사랑 상대가 자신에게는 보여주지 않던 반짝이는 눈을 친구에게 매일 보여준다. 실망과 질투, 열등감 같은 본능적인 감정은 계속해서 자극되지만, 사방이 카메라인 상황에서 부정적 감정의 표출은 통제당한다. 사랑을 찾으러 온 합숙의 장소는 회복할 수 있는 쉼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출연자들은 일상의 쉼과 단절된 낯선 곳에서 억눌린 감정에 힘들어한다.  수면시간은 짧아지고 살은 빠지며 끝내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것은 만인에게 공개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굿 플레이스'는 죽기 전 선행을 베풀던 사람들이 가는 천국 같은 굿 플레이스를 그린다. 풍요롭고 아름답다는 굿 플레이스다. 하지만 잘못 배정된 엘리너(악인)로 인해 사건이 발생한다. 그렇게 천국에 잘못 간 엘리너를 개과천선시키려는, 그 이웃들의 노력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웃인 4명의 주인공은 점점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는 역할이 된다. 굿 플레이스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꿈꿨지만, 관계 속에서 그곳은 베드 플레이스가 되어버린다.



 소개팅 프로그램의 합숙장소는 굿 플레이스일까 베드 플레이스일까. 그곳은 매력적인 짝의 성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 뒤에 가려진 억압이 있다. 그것은 퇴근 후 일주일~한 달 동안 8명이 정해진 집에서 생활하여야 하고, 그 집은 사방이 모니터링 카메라로 되어있으며, 모든 일은 공개될 수 있다는 것다. 이것은 집까지 이어지는 성과사회의 지배력을 상징한다. 매력적인 짝을 만들 기회는 주어졌으니, 본인만 잘하면 된다는 작은 사회다. 다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출연자가 탈락할 때까지 퇴근시키지 않았다면, 합숙 8명은 모두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탈락할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는 듯하다.   

 


 이러한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설렘의 심쿵이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지만, 오히려 깊이 공감하는 건 처연한 심쿵인지 모른다. 규율 사회에서 개개인을 착취하기 위해 개인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성과사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발적 착취'를 유도한다고 한다. 규율 사회에서의 자신의 방은 공동체의 규율을 벗어난 곳이지만, 성과사회에서는 자신의 방도 성과를 벗어난 공간이 되지 못한다. 오늘도 스스로 자신의 성과를 감시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잠시 잊기 위해 성공한 타인이 사랑에 패배하는 일을 지켜본다.




* 커버 사진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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