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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렌지 Dec 05. 2021

별것 없는 쓸쓸함

영화 '소공녀'

 


직장 후배와 귀농에 대해 이야기했다. 열흘간 밤낮없이 매진한 프로젝트가 끝낸 뒤였다. 우리는 주말 동안의 쉼에도 몸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 는 귀농에 대한 유튜브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의 부친이 최근 퇴직을 하시고 귀농을 하신 터였다. 그는 귀농 이후 안색이 달라진 아버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는 반평생 교대 근무하셨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왜 예민하게 대했는지 조금 알 거 같다고 말했다.     



 과거 카르페디엠, 욜로가 개인적인 구호 같았다면 요즘 매체에 나오는 딩크족, 파이어족, 미니멀리스트 좀 더 구체적인 행동 양식을 추구하는 것 같. 세 가지 모두 삶에서 노동의 시간을 줄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 '피로사회(2012)'에서 말했던 '누구든지 뭐든 될 수 있다.'는 '자기 착취의 성과사회'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 대안일까. 스스로를 향한 착취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개인이 쉼을 위한 사투 같다.


 

 영화 소공녀(2018, A Little Princess)는 성과사회의 평범함에서 물러난 미니멀리스트 '미소'가 주인공이다. 미니멀리스트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이는 사람들인데, 궁극적인 미니멀리스트는 스님될 것다.  그런데 미소는 엉뚱하게도 스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세 가지만을 필요로 한다. 녀가 욕망하는 것은 담배와 술, 연애뿐이다.

 그녀는 일을 하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관 데이트도 헌혈을 하고나서야 가고, 보일러가 돌지 않는 집에서 스킨십을 하려다가도 멈추지만, 그녀는 괘념치 않는다. 


 

 살 곳이 없는 처지가 되어도 그녀는 부끄러움이 이 당당하다. 그 이유는 그녀가 앓는 병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미소의 병명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 이다. 일각에서 그 병은 극심한 스트레스 이후에 발현된다고 한다. 병명은 단두대에 오르기 전 하루아침에 머리가 백발로 됐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미스터리로 유래되었다.

 미소는 성과사회에서 자기 착취로 병을 얻은 사람 상징하는 것 아닐까. 미소는 체면 때문에 자신을 착취하지 않는 것 같다. 러나 집이 없는 그녀는 도시를 배회한다. 



  소공녀를 처음 보았을 때 미소가 살 곳이 없어 전전긍긍한다고 생각했다. 담배와 술, 남자 친구만을 바라는 30대 중반 여성이 직장도 없고, 살 집도 없고, 병까지 있으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생각의 기초가 된 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망이, 혹은 중산층이나 상류층이 욕망하는 것이 좋은 삶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인류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의 욕심이고, 이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주장처럼 보편적인 욕망을 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규범처럼 받아들여야 할까.



 미소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남자 선배의 집에서 묵을 때, 미소는 선배로부터 뜬금없 프로포즈를 받는다. 그렇게 미소의 입에서는 폭력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누군가는 상대방의 결혼 시기에 대해 쉽게 판단한다. 영화를 보던 나도 판단했고, 나의 결혼시기도 자연스레 판단당했다. 보편적인 욕망 동떨어진 사람에 대한 무례였다.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음에 걱정다. 연장자들은 청년에게 나이마다 해야할 과업이 있음을 강조한다. 보통 그들이 했던 것인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자부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이해하고 넘어가면 되는 걸까. 그런 것들로 시작하는 대화는 진부하다. 때때로 걱정이 담긴 쓰레기봉투를 건네받는 것 같기도 하다.



 타인에게 평범함을 추구하라는 것이 어떻게 독려할만한 것이 되었을까. 평범함이라는 기준은 집단에 따라 달라지면서 비교를 통해서 깨어질데 말이다. 결국 한국에서의 평범함은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쉽게 깨어 것이다. 그런데 그 깨어진 평범함을 다시 주변의 집단에 맞춰 계속해서 개인이 보수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 사람이 모든 면에서 평범함을 추구하는 가치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의 소수의 것에 대한 불안과도 연관이 있다. 가령 과거 왼손잡이가 소수라는 이유로 교정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관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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