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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렌지 Dec 05. 2021

비판의 쓸쓸함

어른들의 입지전쟁, 아메리칸 셰프, 미슐랭


 입지는 인간이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선택하는 장소라는 뜻을 가진다. 학생들이 입시전쟁을 한다면 직장인은 입지전쟁을 한다. 어느 중년 남성에게 반려견보다 작은 입지는, 직장에서는 지키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날은 직장에서 한참 선배의 입지를 건드렸다. 앞뒤 생각 안 하고 말꼬리를 잡았고, 후회와 죄책감으로 며칠간 위축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 단골 국밥집과 소주의 도움이 있었지만, 서로에게 상처 낸 관계는 어색함을 남겼다. 어쩌면 그 어색함으로 이후 서로의 입지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일터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필요할 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누군가는 조직 내 이슈를 재빠르게 전파하고, 누군가는 흠을 잡고 불만을 말하면서 비평가의 위치를 서고, 누군가는 자기 업무에 열중하고 완성도 있게 해내고, 문제의 해결책을 자판기처럼 꺼내 주는 사람 등 저마다의 방법을 사용한다. 저마다 입지를 갖기 위한 방법을 존중하고 싶지만, 기세나 연륜으로 비평가의 위치에만 서있려는 방법은 경계하고 싶은 방법이다.



 무언가를 비평하는 순간, 입지를 가지게 된다는 점은 특이하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2014)에서 요리 비평가 램지 미첼의 독설은 SNS의 인기이다. 그 독설은 악당을 상대로 현란하게 쌍절곤을 휘둘러 제압하는 영상 같다. 하지만 셰프 칼 캐스퍼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요리하는데 억울하게 쌍절곤에 맞아 아프다. 그 비평 하나에 동료들과 쌓아올린 노력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분을 터뜨리지만, 그것은 촬영되어 영화 내에서 SNS로 흥밋거리로 퍼진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밥상을 차린 나문희 할머니가 고구마호박을 계속해서 정정하는 며느리 박해미에게 "호박고구마악!, 이제 됐냐" 라고 기염을 토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유쾌하게 보기는 했찌만, 어쩌면 선을 넘은 진지함이 다수의 힘 앞에서 유쾌한 웃음거리로 전락한다는 것은 때때로 달갑지만은 않은 사실이다.



 비판으로 인한 입지의 상실은 사람을 위험할 수 있다. 맛있는 맛이라는 억만 가지의 맛 중 하나만을 표현하는 셰프가 비평가로부터 입지를 지키기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오랜 노력이 켜켜이 쌓인 사람일수록 그것은 아픈 것이다. 이것은 한 셰프를 죽음으로 몰기도 했다. 프랑스 셰프 '베르나르 루아조'는 1991년 미슐랭 3 스타를 처음 받았고, 2002년까지 10년 이상 별점을 유지한 유능한 셰프였다고 한다. 하지만 2003년 별점이 2 스타로 강등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후, 그가 한 선택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일이었다. 



 미슐랭 평가단은 1년에 2, 3번씩 예고 없이 레스토랑을 방문하는데, 그것은 매일 주방에서 나가는 500여 개의 요리가 모두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미슐랭은 요리에 대한 철학과 열정을 가지는 셰프를 비평함으로써, 쉽고 효율적이라는 방법으로 입지를 다진 건 아닐까. 비평하게 되는 순간, 비평의 대상보다 높은 위치를 시사하게 된다는 점은 정말 의아하다.



 오래도록 남아있는 어느 네티즌의 글이다. 과거 아쉬운 성적을 냈던 월드컵에서 국가대표를 향한 수많은 질타와 욕설 가운데, 진심을 눌러 담은 묵직한 문장이었다. 

"과정에서나 결과에서나 아쉬운 점도 많고 화나는 점도 이해할 수 없는 점도 많았던 경기였지만 요번 경기를 보면서 시간 아깝다거나 경기를 본 것이 후회되진 않았다고 느낀 이유는, 경기장에서 뛴 선수들의 투자와 열정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문제와 잘잘못은 누구나 따질 수 있고 비판과 비난은 언제든 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 또한 타인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얼마나 무익했는지를 암시하는 말로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을 인용했다. "사람들을 꿰뚫어 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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