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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렌지 Jan 24. 2023

염남매의 연민

'나의 해방일지'(2022)



 

 드라마를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면, 그것은 소설 같은 이야기와 일상적인 이야기로 나눌 수도 있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는 후자에 가깝다.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는 악역의 비중보다는 현실 자체가 위기라는 점에 무게를 싣는다. 따라서 등장인물과 고민과 의지의 말들은 현실과 닿아있으며, 그것의 방향은 억압에 있는 이들을 향한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삼 남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녹록지 않은 도시생활에 대해 말한다. 삶의 혹독함 중 하나는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 아닐까. 가령 도시는 누군가에게 '인류 번영을 이끈 최고의 발명품' 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도시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빠짐없이 넣어야' 하는 곳이다. 출퇴근이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할만한 삼 남매에게 더 그렇다.



 특히 막내 미정은 도시의 복잡함에, 다수와의 관계에 힘들어한다. 미정의 회사는 혼자 있는 이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회사의 행복지원센터에서는 미정에게 사내모임을 적극 권유하지만, 그곳들은 미정이 찾는 고요함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결국 그녀는 모든 관계가 노동 같다며 울분을 토한다. 그러고 보면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의 조건으로, 타인으로부터 독립적인 상태와 스스로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꼽았다.



 둘째 창희는 도시에서 돈을 추구한다. 그것이 전혀 힘든 것이 아니라는 듯, 그럴듯한 자동차와 유모차를 위한 욕망을 자신의 것인 양 성실하게 쫓는다. 하지만 결국 자신은 '돈에 깃발 꽂고 죽어라 달리는 욕망덩어리'가 아니었다며 여기까지 달려봤으면 됐다고 말한다. 창희는 성실함 뿐만 아니라 유창한 언변으로 드라마의 이야기꾼 역할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 틈 사이에서 과장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깨닫는다. 결국 혼자 있으니까 되게 차분하고 다정해진다는 고백을 한다. 마지막화에서 그는 분명 새로운 목적지를 찾는다.



 첫째 기정은 도시에서 사랑을 추구한다. 그녀는 불혹에 다가가는 나이에 고르고 고르다 제대로 된 사랑 하나 못해봤다고 한탄하지만, 태훈과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기정은 자긴 진돗개 같은 여자라며 태훈을 지켜주고 싶어 하다가, 결국 왜 연민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토로한다. 돌싱남인 태훈의 어린 딸이 기정에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물어볼 때, 그때는 중학생 소녀와 중년의 여성이 서로를 연민한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 들어온 태훈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기정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삼 남매가 안간힘으로 도달한 다음 정거장을 보여준다. 그곳이 남부러워할 만한 곳은 아니지만, 그들은 분명 스스로를 들여다보면서 자신과 타인을 연민하면서 달라졌다. 미정은 구 씨를, 기정은 태훈과 유진을, 창희는 죽어간 할머니와 어머니와 동네형을.  

 '나의 해방일지'에서 작가는 미정으로 하여금 추앙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겨울 동안에 누군가를 추앙할 수 있다면, 봄에는 다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다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사람을 추앙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연민이 필요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진 출처: 나의 해방일지 포스터,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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