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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렌지 Jan 24. 2023

자기 연민일까

영화 '써니'(2011)

 



 영화 '써니(2011)'의 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중년의 된 어른의 나미(유호정)가 중학생의 나미(심은경)를 안아주는 장면이다. 나미는 중년이 되고서야 상처받았던 자신을 안아주었다. 그 장면을 보다 땀이 한 방울 떨어지듯 눈물이 떨어졌다. 슬픔을 느낄 새도, 코가 찡할 새도 없이 흐르는 눈물에 혼자 당황해하며 그 이유를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 장면을 보며 스스로의 과거를 연민했던 것 아닌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최근 독서모임에서 만난 그는 오은영 님의 책 '화해'(부재, 상처받은 나와 마주하는 용기)에 대해 말했다. 책에서 말하는 '화해'가 타인과의 화해가 아닌 스스로와의 화해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 부모들을 위한 책이기도 했다. 책을 추천한 그는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감정적인 성격이었던 자신에 반해 부모님은 냉정하고 차가우셨다고 했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깊어진 골에 대해 말했다. 그의 말에 대해 곱씹으며 생각하다가 그가 부모님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분노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과거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자신의 판단보다 부모의 판단에 따랐던 스스로에게 분노하는 것 같아 보였다.






  최근 분노에 대해 예민한 스스로를 돌아봤다. 스스로 쉽게 화내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합리하게 당하는 분노에 대해, 그리고 타인이 다른 타인에게 분노하는 것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스스로가 쉽게 분노하게 되는 상황은 상대가 불합리하게 분노한다고 느낄 때였다. 내게 향하는 분노가 아닌대도, 험담을 듣는 것 또한 무척 힘들었다. 왜 분노에 대해 민감하게 차단하려 했던 걸까.



 지난 연애에서도 그랬다. 상대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가끔 분노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했다. 그때 종종 똑같이 분노에 맞섰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녀는 왜 분노로써 얻어내려 했을까. 왜 나는 그녀가 분노할 때까지 주지 않았을까. 왜 그녀의 분노에 대해 왜 똑같이 분노로 맞섰을까. 그녀를 연민할 수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려면 스스로와 화해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중학교 때 그런 기억이 있었다. 인생에서 강압적으로 소중한 것을 빼앗긴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불합리한 분노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스스로를 느끼게 했다. 얼마 안 가 내 것을 뺏은 그는 삶에서 사라졌지만, 그에게 소중한 걸 쉽게 뺏겨버린 과거의 자신은 계속 존재했다. 그때부터 분노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시작됐을 지 모르겠다.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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