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라 쓰고 업무 던지기라고 읽는)에 대한 거절을 어려워한 적이 있었다. 단지 입버릇처럼 붙어있던 '넵.'이 그 첫 번째 이유였고, 무능력해 보이기 싫다는 내면의 압박이 두 번째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니 만큼, 서로 도와야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이유 역시 포함된다.
"오 빠르게 잘해왔는데?! 고생 많았어."
그렇게 던지기 당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결과물을 보여준다. 말과는 달리 '으음~'의 눈빛과 갸우뚱의 고갯짓이 돌아오곤 했다.
"밍님, 잘했는데, 내가 조금 더 필요한 거 찾아서 수정했어. 흐름도 조금 바꾸고. 한 번 참고해 봐~"
어렸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 위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곤 했다.
부탁에 대한 거절을 으레 나쁜 사람이라 잠정적으로 치부해 버리는 내 내면으로부터의 목소리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밍아 너도 하나 사줄게! 하나 골라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하나 골라~"
"아 맘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반면 제안에 대한 거절은 참 잘해왔던 것 같다.
참.. 아이러니한 인간 같으니.
제안에 대한 거절은 사람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던 내면의 목소리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때였다.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내면의 목소리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그 경계가 희끄무레해지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밍님, 이것 좀 해줄 수 있어요?"
"당장 마감 일정이 빠듯해서 좀 힘들 거 같습니다. 대신 찾으시는 것에 대한 자료는 ~~한 것들이 있는데, 참고하실 수 있게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보내드릴까요?"
"아 괜찮아요. 그럼 나중에 디자인만 좀 잡아줄 수 있어요?"
"확답은 드리기 좀 어려운데, 혹시 그 시기가 언제쯤일까요?
아니면 색상 참고할 수 있는 사이트 보내드릴게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이후의 추가적인 부탁이 이어지진 않았다.
"오늘은 내가 커피 사줄게!"
"......"
"감사히 먹겠습니다!"
무리의 적막을 뚫고 대뜸 꺼내는 나의 한 마디.
그렇게 식사 후 커피를 한 모금 쭉 들이켠다.
어떠한 관계에서든 간에 중심 시선을 '타인'이 아닌 '나'에 대한 것으로 옮겨오며,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또 변화시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