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의 책장 #17, <연금술사>
20대 후반, 연금술사를 처음 마주했던 나의 감정은 '혼란과 실망'이었다. 당시 열심히 다니던 독서모임에서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명작'이라는 말을 들어서였을까? <연금술사>를 향한 나의 기대치는 하늘과 맞닿을 만큼 충분히 높았다. 그래서였을까? 실망감 역시 지구의 맨틀을 뚫고 핵에 맞닿을 만큼 깊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야..? 왜 이렇게 허무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렇게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기억이 희미해져 갈 즈음, 이 책 역시 내가 <어린왕자>를 수십 번 회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곱씹는 맛이 일품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그 말에 호기심이 생긴 나. 얼른 서점에서 책 한 권 구매하여 다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기대감은 저 밑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둔 채.
앞자리가 바뀌고, 사회생활을 햇수가 1년, 2년 조금씩 늘어나고, 1년 간의 입원 및 재활 등등 여러 이슈들이 생긴 나에게 <연금술사>는 완전히 다른 책으로 다가왔다. 도입부에서부터 나의 머리는 망치로 한 대 쾅 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연금술사>의 도입부는 나르키소스(나르시시스)의 이야기를 짧고 강하게 소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호수'의 입장이 조금 다르게 대변된다는 점이다.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숲 속의 모든 것들은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연금술사 속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바라보는 '호수'는 조금 다른 이유로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바로 나르키소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슬퍼한다는 것. 시선을 조금 다르게 옮겨왔을 뿐인데, 전혀 다른 내용의 것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에서 이미 벙-찌게 됐다.
<연금술사>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양치기였던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담은 이야기.
산티아고는 '피라미드 근처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소화한다. 마침내 피라미드 근처에서 자신을 그토록 설레게 한 보물을 찾아낸다. '자아의 신화'를 찾는 엔딩. 그는 '자아의 신화'를 향한 한 마디를 남기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피라미드 이전가지 '자아의 신화는 찾는 여정'이었다면, 이젠 '자아의 신화를 실행'하기 위한 여정을.
이 과정 속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자신의 돈을 탈탈 털어가는 사기꾼, 메카 순례를 꿈으로 간직한 채 크리스털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 연금술사를 만나기 위해 여행 중인 영국인, 연금술사, 그리고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려준 파티마 등. 연금술사를 제외한 주요(?)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 각자 '자아의 신화'를 좇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그 방식에서만 서로 다른 점을 보이고 있을 뿐.
누군가는 그것을 '영원한 꿈'으로만 둔 채 자신의 현실을 위한 원동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반면, 누군가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두 발 벗고 나선 뒤 깨달음을 얻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그 깨달음이 다소 허무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여정은 자고로 값진 것이었으리라. 깨달음을 위한 '한 발자국'이 바로 앞에 있음을 알 수 있을지언정, 실행으로 옮기기가 때론 어려운 경우가 많을 수가 있으니.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아의 신화'를 인지하고,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전공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와중에 스스로를 향한 의구심을 지속적으로 던지곤 했다. 그리고 이건 지금도 매한가지. 이 길이 맞는 건가? 이 길의 끝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아니, 끝이 있긴 한 것일까? 더 늦기 전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가도 이내 그 생각을 이끌고 함께 나아간다.
어쨌든 의구심을 제시하는 것도 '나'이고, 이것을 끌고 가는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이 기나긴 여정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한 여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