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밍한 밍 May 24. 2024

사람은 역시 사람이다

밍의 책장 #18, <로마법 수업>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로마'는 전 세계, 특히 서방국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강대국임에 틀림없다. 대표적으로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가 그랬고, 로마의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유럽을 오간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대제국을 세운 로마. 그 로마의 이면엔 '법'이라는 강력한 수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신의'를 가장 중요시했던 로마였기에, 그들의 성문법과 관습법이 제정됐을 때 그 잠재력은 더욱더 폭발했으리라.


  그렇다면  법의 존재의의는 무엇일까. 법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의'를 실천함에 그 존재의의가 있다. 이를 위해 때론 강제력이 수반되기도 한다. 여기서 '사회질서'를 이루는 근간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 '사람'이다. 그렇다. 법은 '사람'의 사회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한다. 이를 위하여 자연법, 관습법, 헌법 등 다양한 법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비단 현대의 법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로마에서도 그들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로마법이 존재했다.



  먼저 그들에게 법은 사람을 잔인하리만치 두 부류의 것으로 나눈다. 시민이라 불리는 '자유인'과 그렇지 못한 '노예'. 하지만 사람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희망'이라고 하지 않던가. '노예'가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을 '법'으로 정해두었다.  안타깝게도 태생부터 자유인이었던 신분과 노예에서 신분상승의 꿈을 이뤄낸 끝에 달성한 자유인 간에는 물론 차이점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 역시 '법'으로 정해두었다.


  자연법에선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 때문에, 자유인과 노예 간 잔인하리만치 명확하게 줄을 긋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비판하는 이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로마법은 자연법이 아닌 실정법이었다. 실정법에서 인간은 오직 자유인에게만 국한된 것이었다. 누군가는 우월의식을 느끼고, 누군가는 열등감을 느낀다.


  씁쓸하지만, 이러한 우월의식과 열등감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무한 경쟁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오늘날에는 더더욱. 누군가와의 끊임없는 '비교'라는 담금질에 스스로를 몰아넣는다.

'내가 쟤보다 못한 게 뭐지?' '와~ 저런 애도하는데.' '분명 편법을 썼겠지? 정당하게 이뤄낸 건 아닐 거야.'


  어쩌면 이러한 것이 DNA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본능일 것 같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 본능이 집단을 형성하며 때론 법(텍스트)을 통해, 때론 대화(소리)를 통해, 때론 SNS(시각) 등을 통해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로마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의'였다. 그래서일까? 로마의 형벌은 오늘날과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오늘날의 형벌은 범죄자의 '교정', '교화'의 성격을 띠는 면이 있다면, 로마의 형벌은 '속죄', '징벌', '억제(예방)'의 수단이었다. 교정? 교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로마법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범죄에는 '사형'이 규정되어 있으며, 사형의 종류 역시 다양하다. 그중 극형이라 불리는 것으로는 십자가형, 맹수형, 화형이 있다.


  후에 폐지되긴 하지만, 십자가형은 오직 노예들만이 받는 극형이었다. 맹수형은 원형경기장에서 맨몸으로 맹수와 싸워 이겨야 하는 형벌이었다. 만약 맹수와의 싸움에서 이기면 어떻게 될까? 그 용맹함이 인정받아 석방되었다. 다만, 인간이 맨몸으로 맹수와 싸워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되었을까. 맹수형이 잔인한 이유는'암담한 상황에서 보이는 희망 같지 않은 희망'을 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화형에 처해지는 죄수는 불이 붙기 쉬운 물질로 흠뻑 젖은 옷을 입는다. 죄수에게 이러한 옷을 주는 이유는 하나. 그가 불길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고...


  또한 이 외에도 한 가지 흥미로운 형벌이 있다. '기억말살형'이라는 형벌이다. 기억말살형을 받은 죄인의 이름은 각종 문서 등에서 삭제됨은 물론이거니와 기념비, 동상 등은 파괴하고 유언, 증여 등은 모두 효력을 잃는다. 죄인의 흔적을 깡그리 지우는 셈이다. '나'는 분명 문명 속에서 삶을 살아가긴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문명 속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이 얼마나 애통한 일이지 아니한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정작 나는 '무'인 것이다.


  흔히들 미래를 알려거든 역사를 공부하라 한다. 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법 체계에도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엔 큰 맥락에서의 공통점이 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어조 등이 다를 뿐.


  수 천년 전에 편찬된 법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오늘날의 법과도 많은 점이 닮아있다. 표현하는 방식/방법이 순화되어있는 점이 몇 군데 보일 뿐. 큰 줄기는 동일하다. 사람이 만드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근간 위에 쌓아 올린 그 무언가.


  아무튼 간에 사람은 역시 사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모두 여행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