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의 책장 #20,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세상엔 정말 다양한 미술관이 있고, 그 미술관은 저마다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전시하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중 유명한 미술관을 꼽는다 했을 때, 단연코 떠오르는 미술관 중 하나가 '루브르 박물관' 일 것이리라. 매 해 수백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그곳엔 모나리자를 비롯한 교과서에서 봤음 직한 다양한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혹은 원하는 예술작품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친절한 작품 해설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이 가볍게 훑어볼 수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은 사람들에겐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작품의 부분 부분을 자세히 뜯어볼 수 있어, 후에 다시 그 작품을 만난다면 더 깊은 감상에 빠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미술관에 인 인문학자'는 크게 4가지 챕터('신화와 종교', '역사', '예술', '인간')를 기준 삼아 작품을 해설하고 있으며, 조각상의 경우 앞, 뒤, 옆 등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들을 바라보며, 평면으로만 작품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독자에게 입체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효과를 준다. 또한 회화의 경우 그림 부분 부분을 잘라 강조하여 사뭇 놓칠 수 있는 디테일함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매력포인트로 다가올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작품을 소개하고 있기에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걸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 중 특히 더 나의 시선을 끌었던 몇 가지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1. 회화: 외젠 들라크루아, <키오스 섬에서의 학살>(1824, 유채)
이 작품은 1822년 지중해의 키오스라는 섬에서 벌어진 학살을 고발하기 위한 작품이다. 화가가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절대왕정으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던 유럽. 이에 반대하기 위해 그리스에서는 그리스독립전쟁이 일어났고, 이 기세를 누르기 위해 키오스 섬에 상륙한 오스만 튀르크(당시 그리스는 오스만 튀르크의 식민지였다)로부터 잔혹한 학살에 대한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당시 약 10~15만 명이던 키오스 섬은, 이 학살로 인하여 섬 인구가 약 2만 여 명도 채 되지 않은 수로 줄어든다. 가히 보여주기식 학살이 아니려야 아닐 수 없다.
오스만 튀르크 병사에 의해 납치되는 여인과 죽은 엄마의 젖을 빠는 아이 그리고 망연자실한 표정의 여인 등 당시의 학살이 얼마나 잔인했는가에 대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자 했던 화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고발 성격의 작품을 여럿 낸 들라크루아는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안중에도 없었고, 그저 기법에 대한 비판만이 한가득이었을 뿐.
2, 조각상: 작자 미상,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니케상)>(BC 200년경, 대리석)
높이가 328cm이나 되는 거대한 조각상. 얼굴과 팔이 없는 불완전한 모습임에도 <모나리자>의 뒤를 잇는 유명한 작품이다. 프랑스로 이관되었을 당시에도 부서진 조각들을 일일이 조립하여 점차 예술작품의 형태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하얀색 대리석을 재료로 하는 이 조각상의 파편은 지금도 사모트리케의 섬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며 한쪽 손에 나팔을 들고 승전을 알리는 여신상의 모습을 짐작케 하였다.
이 조각상의 복원 작업은 최근까지도 이어졌고, 금액만 무려 400만 유로의 거금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이 금액은 프랑스 사람들의 모금으로 충당되었다고 하는데.. 승리의 여신상(니케상)의 복원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승리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있었을까?
사랑에 대한 승리? 행복을 위한 승리? 건강을 위한 승리? 성공을 기원하는 승리? 혹은 당장 내일 예정되어 있을 수 있는 면접에서의 승리?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저마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모금에 참여하였으리라 예상된다.
그 간절함을 담은 숭고함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