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의 책장 #21,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正義).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2. 바른 의의(意義)
3.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4. 플라톤의 철학에서, 지혜·용기·절제의 완전한 조화를 이르는 말.
그렇다면 이 정의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정의를 판단하는 기준을 '행복', '자유', '미덕'으로 두고 이야기한다.
- 정의는 사회 구성원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공리주의
- 정의는 사회 구성원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가: 자유지상주의
- 정의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미덕 윤리
- 정의는 사회 구성원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공리주의
공리주의는 최대 행복의 원리라고도 불린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야기하며, 오늘날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는 윤리적 사상이다. 공리주의는 쾌락을 선, 고통을 악으로 보고 있으며, 쾌락을 증대하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행위는 옳은 것이며, 그 반대인 쾌락이 감소하고 고통이 증가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말하고 있다. 여기에 '정의'를 빗대어 표현하자면, '정의'는 사람들의 행복을 증가하는 방향으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정의와 가장 맞아떨어지는 맥락처럼 보인다. 사회를 구성하는 주축(인간)의 대다수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행위를 정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 정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선택으로 인한 결과가 나타났을 때, 사회가 누릴 수 있는 전체 행복량이 가장 긍정적인 선택이 되기 마련이니까.
공리주의의 이면을 살펴보면 조금 다르다. 공리주의에서 추구하는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선 기꺼이 소수의 희생을 감내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존중하고 있는 개개인의 권리나 정의에 대한 형평성을 깡그리 무시당한 채, 그저 다수만을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펼쳐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과연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 정의는 사회 구성원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가: 자유지상주의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공리주의와는 대비되는 것으로, 집단이 아닌 '개개인'에게 모든 관점을 맞추고 있다. 개인의 권리와 선택을 중요시하며, 사회공동체의 최소한의 개입을 이야기한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이러한 '개인의 자유'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 역시 온전히 자신이 지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몇 번이고 강조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와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 발생되는 경제적 불평등(부익부 빈익빈)도 있겠지만, 공동체의 가치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책임에 대해 그 어떠한 것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지컬적인 측면으로 봤을 땐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스스로를 칭하며,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룰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공동체 의식' 덕분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이뤄 생활을 영위하였고, 공동체 안에서 주어진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행하며 삶을 가꾸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지상주의는 이러한 '공동체'가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간과하는 경향이 있으며, 공동체에 미치는 자신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간과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과연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 정의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미덕 윤리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 그것이 이론적인 활동이든 실천적인 활동이든, 그 최종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필수 요소는 '미덕'이라고 말한다. 미덕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나타내며, 정의는 이러한 미덕을 통해 실현된다고 샌델은 말한다.
미덕 윤리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결과' 그 자체만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자유지상주의에서 바라보는 '개인의 삶' 그 자체만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미덕 윤리는 행동에 의한 결과 혹은 규칙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즉,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의 선택이 공동체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성찰해야 함을 이야기하며 미덕 윤리를 소홀히 하는 지금의 시대상을 비판한다. 개인의 도덕적 성장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고, 곧 그 사회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미덕 윤리야 말로 정의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셈이니.
저마다의 관점에 따라 정의를 정의 내리는 것은 무척이나 다를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중엔 분명 하나의 공통점은 가지고 있을 지니. 지금 당장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나와 내 주변의 행복한 삶'을 밑바탕으로 올바른 무언가를 행하기 위한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정의를 정의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그 순간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