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미한 회복과 공감대 사이, 그 어딘가에서 #14
길랭바레증후군, 열네 번째 이야기
○ 2022년 10월 넷째 주
옆 자리 어르신께서 퇴원함과 동시에 독립생활을 시작한다.
8주 간 함께 생활했던 간병인과의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밍군, 지금까지 서운했던 거 있으면 이야기해 봐요. 이제 독립생활 하잖아."
"서운한 거 없어요~ 오히려 잘 대해주셔서 감사하죠."
"지금 아니면 서운한 거 말할 기회도 없잖아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세요?"
"다른 층 환자 보러 바로 가요~ 오며 가며 볼 수 있을 거야."
"안 쉬고 바로 보러 가세요? 집에서 조금 쉬었다가 가도 될 거 같은데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되네."
"그래도 오며 가며 뵐 수 있으니 자주 인사드릴게요."
"그래요. 휠체어로 이동할 때 조심해요."
물 뜨기, 과일 깎기 등등 자잘한 것들을 혼자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시점.
생각보다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점은 분명 존재했으나, 심적으론 더 편안했다.
그래도 내가 거동이 가능한 곳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
과일 깎는 실력도 겸사겸사 늘고 좋지 뭐.
보바스테이블에 몸을 살짝 기댄 채 선다. 한 발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내려앉는다.
다리 전체에 들어가는 힘이 남다르다.
발가락, 발바닥, 발목,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까지.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쓴다.
덕분에 부들부들 떨려오는 내 다리.
"밍님 괜찮으시죠? 넘어질 거 같으시면 바로 털썩 주저앉으시면 돼요."
"아유, 안 넘어져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래도 혹시 모를 수 있으니 넘어질 거 같다 싶으면 바로 뒤로 밀 거예요."
"안 넘어져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여간 말은 지지리로 안 들어요.
확실히 다리 힘이 많이 부족한 지, 다리가 자꾸 안쪽으로 모인다.
난 분명 곧이곧대로 내려갔다 올라온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보이는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밍님 다리 안쪽으로 굽어지면 안 돼요."
"그게 맘대로 안 돼요."
"최대한 안 모이게 다리랑 엉덩이에도 힘 빡 주세요."
"헝"
그래도 지난주에 비해 왼쪽 엉덩이와 오른쪽 허벅지에 힘이 좀 더 들어오는 것 같다.
단순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우니 그렇다고 치자.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린다. 양발 다 각각 올려지긴 하지만... 발이 바깥으로 돌아가면서 올라간다.
"밍님 지금 다리 보이세요?"
"네 보여요. 다리가 바르게 올라가지 않고 바깥쪽으로 틀어져서 올라가네요."
"맞아요. 허벅지 바깥쪽 힘이 부족해서 안쪽 힘을 많이 써서 올리다 보니 그럴 수 있어요."
"오..."
"오가 아니라.. 이제 천천히 들어 올리면서 허벅지 바깥쪽에 힘이 들어올 수 있도록 운동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조금만 힘이 부족하다 싶으면 곧바로 다리가 틀어져버린다.
"밍님~ 다리 틀어지면 안 돼요."
"다시 해볼게요."
"좋아요."
덕분일까. 하루종일 양 허벅지 바깥쪽에 찌뿌둥한 기운이 감돈다.
힘은 제대로 들어간 듯하다. 그 힘이 미세해서 그렇지.
"밍님 저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해봐도 돼요?"
"네, 그럼요 그럼요."
"여기 오신 다음에 지팡이로 걸어본 적 없으시죠?"
"네.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괜찮으시면 한번 걸어볼까요?"
"네 좋아요."
네 발 달린 의료용 지팡이로 첫 발을 내디뎌본다.
치료실에 비치되어 있는 네발 달린 의료용 지팡이를 들고 오는 치료사.
길이를 최대한 늘리고,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잡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한 걸음을 뗀다.
"??? 선생님, 이게 왜 되죠?"
"오 그러게요. 예상은 안 했는데 되네요."
"근데 확실히 허리에 힘이 많이 들어오긴 해요. 허리로 다리를 끌어다 쓰는 느낌?"
"아마 아직 다리 힘도 부족하고, 불안정하게 느껴져서 그럴 거예요. 조금 더 걸어볼 수 있으시겠어요?"
"네네, 근데 영 불안해서 왼손에 뭘 받치고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좋아요, 조금 더 걸어봐요."
치료실 입구서부터 자리까지 되는 짧은 거리를 걸어본다.
그와 동시에 돌아가는 행복회로.
'오 조만간 퇴원할 수 있나?'
행복회로는 행복회로일 뿐이었다.
병원 침실에서 일어나 본다. 다리가 모아지지 않고 얼추 일어나 지네.
3~4번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한다. 다리가 다시 모아지기 시작한다.
아우 힘들어.
완벽한 안정성을 가지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어설 때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떤다.
그럼에도 일어나 지는 게 어디야. 이전엔 몸에 반동을 줘도 일어나 지지 않던 다리였는 걸.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고, 자기 전 옥상에 올라 하늘구경을 한다.
옥상에 올라 찬 공기를 쐬고 있으면, 맘 속 답답한 무언가가 잠시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휠체어에 가만히 멍 때리며 앉아 밤공기를 쐰다.
달구경은 덤. 심심할 적마다 달 사진을 찍는다.
찍고 맘에 들지 않아 지우고, 다시 찍고 맘에 들지 않아 다시 지우고.
병원생활의 낙. 달구경.
주말 낮에도 옥상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즐기는 중에 한 아주머니께서 말을 걸어온다.
"혹시 길랭바레증후군 앓고 있어요? 저도 길랭바레증후군 환자거든요."
"어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요즘은 좀 어때요? 처음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요?"
"네. 저는 양다리에 마비가 와서 아예 서있질 못했는데, 지금은 초기에 비해선 좋아지긴 했어요."
"아 그러셨군요. 저는 왼 다리랑 오른쪽 팔에 마비가 와서 지금 입원해 있어요."
"사람마다 증상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던데, 진짜 그렇군요. 지금은 좀 나아지셨어요?"
"네, 그래도 초기에 비해선 힘도 조금씩 돌아오는 게 느껴지는 중이에요."
일요일 오후 2시.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3시간 남짓 저녁이 나올 시간까지 이어졌다.
"아는 분이 길랭바레증후군 판정을 받았다는데, 어디 약 받아오더니 금방 나았대요. 왜 저한테 거기서 재활받고 있냐고. 와서 약 하나면 다 해결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분은 증상이 경미해서 금방 나은 거 아닐까요? 너무 약팔이 느낌 나는데. 그 약이 그렇게 좋은 거였으면 이미 의학계에서 다 처방해 줬을 거 같아요."
"그쵸? 좀 의구심이 들긴 해서 몇 번이고 되물어보긴 했는데. 강하게 주장하시더라구요."
"에이 저 같으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 마디 했을 거 같아요."
병에 관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각자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와 이렇게 장시간동안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 자체가 참 오래간만이라 그런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날 저녁, 곰탕 한 그릇과 과일을 이것저것 챙겨주신 아주머니.
이러한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크게만 느껴지는 병원생활의 연속.
병원생활이 길어질수록 평소 지나쳤던 일상의 소중함을 조금씩 일깨우게 된다.
나와 비슷한 병을 앓는 사람을 만나,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던 시간.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낀 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