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과 눈물 한 방울 사이, 그 어딘가에서 #13
길랭바레증후군, 열세 번째 이야기
○ 2022년 10월 셋째 주
회진 때마다 항상 확인하는 곳이 있다. 바로 발목.
매주 최소 한 번씩은 꼭 앉은 침상에 다리 쭉 뻗어 앉아있는 상태에서 발목을 들어 올려보며, 발목의 가동범위를 확인하곤 한다.
"밍님 발목 한 번 들어 올려볼까요?"
"네."
"지난주보단 좀 더 올라오시네요. 컨디션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운동하는데 힘들거나 아픈 곳은 없으세요?"
"아! 그 허벅지가 뻐근한 느낌이 있는데, 근육통이라고 하긴 하시더라구요."
"뻐근한 느낌만 있으시고 통증은 없으신 거죠?"
"네. 콕콕 찌르거나 아픈 통증은 없어요."
"그럼 근육통일 수 있는데, 통증이 지속되거나 하진 않으세요?"
"네. 며칠 쉬면 나아져요."
"아 그럼 다행이네요. 근육이완제 같은 걸 처방해 드릴 수 있어요."
"음.. 괜찮은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필요하실 때 말씀해 주시면 처방해드릴게요."
시간이 지날수록 시나브로 발목 가동범위도 올라오는 중. 다만 아직 체중을 버티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침상에 앉거나 누워있을 땐 조금이나마 들어 올릴 수 있으나, 서있을 땐..
발목이 꿈적조차 하지 않는다. 바닥과 혼연일체.
치료시간에 열심히 돌리고 있는 SCI FIT.
어느 날 기구를 돌리고 있는 와중에 선생님께서 유심히 옆에서 보시다가 한 마디 걸어오신다.
"밍님 탈만하세요?"
"아니요. 너무 재미없어요. 살려주세요."
"그래도 열심히 타셔야죠. 여기 기능이 되게 다양하더라구요. 지금처럼 저항 값 일정하게 주고 타는 것도 좋지만, 다이내믹하게 타면 더 좋을 거 같아요."
버튼을 몇 번 누르시더니 자전거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주신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나서 맘에 들어 보이는(?) 프로그램을 찾아 설정한다.
스프린트, 언덕 오르기, 언덕 올라갔다 내려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다.
마치 러닝머신에 달려있는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이젠 좀 덜 지루하게 탈 수 있겠지???
지난주부터 시작한 발판을 활용한 운동.
어느덧 일반적인 계단보다 좀 더 높은 높이의 발판에 발을 들어 올릴 수 있게 된다.
허리를 틀어 올려 다리를 올리는 게 아닌, 고관절과 다리의 근력으로만.
물론 아직 두 손을 자유로이 놓은 채로 올라갈 순 없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계단을 올라가 본다.
비상구 계단 양 측에 달려있는 난간을 손으로 붙잡고 안간힘을 써본다.
왼쪽 허벅지는 그나마 튼튼해서인지 손으로 균형만 잡아주면 얼추 올라가진다.
하지만 오른쪽 허벅지론 어림도 없는 소리.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건 느껴지나 딱 거기까지만이다.
다리에서 몸을 들어 올릴 힘이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올라가 보려고 용쓰다 보니, 난간을 잡고 있는 팔로 몸을 들어 올리는 모양새가 나온다.
골반이 틀어지는 건 덤.
마치 거대한 장벽 하나를 마주한 느낌이다.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층간.
"밍님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아뇨. 계단 오르는 건 또 다르네요. 힘들어요. 살려주세요."
"화이팅! 그래도 잘하셨어요. 내려가는 건 위험하니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요."
"하... 좋아요...."
"자 밍님 누우시고, 다리 오므리세요. 힙브리지 자세 취해볼게요. 이건 이제 잘하시죠?"
"네."
"자 그럼 이 자세에서 한쪽 발을 들어 올려볼게요."
"네?"
"잘 들으셨잖아요~ 한쪽 발 들어 올려보세요."
한쪽 발을 슬쩍 들어 올림과 동시에 몸이 틀어진다.
몸이야 어찌 됐던 그래도 들어 올려지는 다리에 스스로 위안 삼는다.
"몸 틀어지지 마시고."
"이게 자꾸 막 돌아가요."
"알아요. 그래서 시키는 거예요. 제가 잡아드릴게요."
그리고 이어지는 스쿼트.
"밍님 스쿼트 할 때 몸이 자꾸 오른쪽으로 쏠려요. 왼쪽 엉덩이에도 힘주세요."
"엥? 쏠려서 내려가요?"
"오른쪽 엉덩이에만 힘이 들어가니까 힘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몸이 자연스레 쏠리는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혼자 운동할 때도 신경 써서 해볼게요."
"몸은 왼쪽으로 틀어져요. 틀어지시면 안 돼요."
"그게 맘대로 안 돼요."
"알아요. 그래서 시키는 거예요. 오른쪽 허벅지에도 힘~"
진짜 살려줘...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또 흐르고, 평가주가 돌아온다.
지난 9월에 비해 눈에 띈 차이가 생겼다면, 이젠 제자리에서 천천히나마 몸을 한 바퀴 돌릴 수 있다는 것.
오른쪽 엉덩이를 축으로 돌릴 수 있게 됐다.
여태 시도해보지 않은 동작을 수행할 수 있게 돼서 그런지, 치료사와 나 둘 다 놀란 눈치.
하지만 왼쪽 엉덩이를 축으로 몸을 돌릴라치면.. 휘청이다 금세 넘어지려는 모습이 연출된다.
더불어 오른발을 축으로 왼발을 앞으로 내디딜 때, 몇 초마다 두 손을 놓을 수 있게 됐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퇴원 '가능성'에 희망의 불씨를 살려본다.
일상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는 있구나.
이번주를 끝으로 병원에서의 회복기가 마무리된다.
재활치료 스케줄에 약간의 변동이 생겨 다음 주부터 조정된 스케줄로 치료가 진행될 예정.
기존에 받던 치료 중 두 타임이 빠지고 두 타임이 조정된다.
기존 함께 해왔던 물리치료사 선생님 한 명을 떠나보내게(?) 됐다.
며칠을 고민하다 끝끝내 아침 첫 타임을 조정한다. 그와 함께 그동안 감사했다는 손 편지 한 장을 전달한다.
그래도 오며 가며 마주할 수는 있겠지.
같은 병실 한 사람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치료실에서 치료를 대기하던 중 부랴부랴 병실로 돌아가서 코를 찔러본다. 다행히 음성.
어떤 조치가 있을 때까지 병실에만 콕 박혀 대기하란다.
원무과 사람들이 병실로 와서 양성 판정받은 사람의 짐을 부랴부랴 싸서 옮기고, 병실을 소독하기 바쁘다.
"아이 내일모레 퇴원해야 되는데, 이게 무슨 난리야. 이러다 퇴원 못하는 거 아냐?"
"어르신 음성이면 퇴원은 시켜드릴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은 음성판정을 받았고, 무사히 퇴원을 하셨다.
지난 9월 비슷한 시기, 나 역시 호기롭게 어르신과 함께 퇴원하겠다고 떵떵거렸건만...
난 내 병실을 굳건히 지키고 있을 뿐.
"난 이제 간다. 밍군도 재활치료 열심히 받고. 젊으니까 얼른 나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나가셔서도 몸조리 잘하시고, 이제 추워질 텐데 길 미끄러운 거 조심하세요. 병원에서 또 뵈면 안 됩니다."
"허허. 그래야지. 그래. 모두들 잘 지내. 우리 여사님도 잘 지내시고."
퇴원 전, 약밥과 떡을 병실에 돌리고 퇴원하신 어르신. 지금도 종종 안부전화로 서로의 근황을 전한다.
열린음악회에서 <사라사테 - 카르멘 판타지 Op.25(연주 김다미, 진영)>가 울려 퍼진다.
좋아하는 곡을 우연히 접하게 되니 마냥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침대에서 멍 때리고 있다가 곡 안내가 나옴과 동시에 휠체어로 몸을 옮겨, 티비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음악감상에 푹 젖는 찰나의 순간.
이 날 열린음악회는 <봄여름가을겨울 - 브라보 마이 라이프>로 끝맺음 지어진다.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확확 와닿으며, 괜스레 눈물이 솟구쳐 흐른다.
병실 침상에 앉아 홀로 눈물을 훔친다.
그저 흐르는 눈물에 애써 무시해 왔던 좌절, 절망 등의 감정을 씻어 내리기 위해 애쓴다.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