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결과와 다잡기 사이, 그 어딘가에서 #19

길랭바레증후군, 열아홉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2년 11월 다섯째 주


"밍님 제가 주말에 해오라는 숙제해 왔어요?"

"아 엄지발가락으로 무게중심 옮기라는 거요? 해봤는데 쉽지 않더라구요."

"오! 잘하셨어요."


내심 자신만만한 마음을 가지고(?) 치료에 임한다. 주말에 혼자 했을 땐 나름 동작이 잘 되는 것 같아서.

발바닥을 벽에 붙인 해, 발을 쭉 펴고 앉는 자세를 취한다.


"밍님 엄지 앞꿈치 쪽으로 힘 더 주세요. 오 그래도 발바닥으로 누르는 힘이 더 좋아졌네요."

"엥 진짜요?"

"네. 양쪽 발 모두 발바닥으로 누르는 힘이 좋아졌어요."


솔직히 난 잘 모르겠지만, 암튼 치료사가 그런 거면 그게 맞겠지.


"밍님, 수동자전거 세라밴드 차고 돌리시네요?"

"네. 저번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거 대로 해보고 있어요."

"오~ 열심히 하는 모습 멋있어요. 화이팅~"

"감사합니다."


오늘도 돌린다, SCI FIT.

주어진 시간 동안 페달의 회전은 멈추질 않는다네.

난 항상 힘들다고 찡얼거릴 뿐이네. 그렇지만 찡얼거림이 아닌 사실을 말하는 것일 뿐인걸.

애증의 SCI FIT. 시간과 정신의 방이 있다면 바로 여기, SCI FIT 의자 위일 것이다.




아주대학교병원 외래를 다녀온다.

지난주에 어금니 꽉 깨물고 전기자극으로 인한 고통을 참아가며 검사를 받았던 근전도검사의 결과를 알아보기 위함.


"밍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밍님 근전도검사 결과를 봤는데, 결과에 따르면 상체 쪽에도 증상이 있었어요."

"상체 쪽에요? 상체 쪽엔 딱히 불편한 건 없었는데요."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기억 한 조각.

한 번은 힙브릿지 운동을 하기 위해 치료베드에 누워있던 때였다.

치료사 선생님께서 등에 힘을 주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게끔 하라는 말을 들었다.

아 그때 등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것 같던데, 그게 마비가 와서 그런 거였구나?


"그래도 상체는 정상수치로 돌아왔습니다. 하체 쪽은 3개월 전에 비해선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 많이 남아 보이네요."


어딘가 돌려 말하는 기분이 들어 단도직입 물어본다.


"선생님, 그럼 정상 수치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 지금 어느 정도 돌아온 건가요?"

"약 20% 정도 돌아왔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래도 발병 후 6개월까진 회복 속도가 붙을 수 있으니 좀 더 지켜보도록 합시다. 6개월 이후론 회복은 되어도 조금 더디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외래를 마치고 다시 재활병원으로 돌아온 후, 근전도검사 데이터를 직접 계산해 본다.

주치의가 말했던 정상범주(지금은 기억이 안 남) 대비 현재 결괏값을 백분율로 환산해 보니, 약 15% 내외의 수치가 나온다. 아 괜히 물어봤네.


며칠 후 재활병원 주치의가 해당 데이터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덧붙여준다.


"밍님, 외래 다녀오셨던 근전도검사 데이터 살펴봤습니다. 3개월 전에 비해선 회복은 있으나, 엄청 좋아진 수치는 아니에요. 제가 예상했던 회복속도보단 더디긴 하네요. 비골 신경 쪽은 검사결괏값이 도출된 건 없구요."

"어? 비골 쪽은 도출된 게 없나요? 이건 아주대병원에서 따로 말씀 안 해주셨는데.."

"네, 비골은 결괏값이 도출되진 않았네요. 그래도 검사 결과에 비해 보이는 임상은 훨씬 좋아 보이시거든요. 길랭바레증후군이 6개월 - 1년 새에 많이 회복되는 경우가 있으니 좀 더 지켜보도록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울컥함. 하지만 여기는 치료실. 당장의 울컥함을 쏟아내는 순간 치료실의 모든 눈길에 나에게 쏠릴 터. 이따금 어금니를 꽉 깨물며 울컥함을 삼킨다.

아 진짜 조만간 치과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약 한 달여만에 오른손에 지팡이를 다시 쥐어본다.

치료실 베드를 따라 천천히 베드 주변을 걸어본다.


"밍님 오랜만에 지팡이 짚고 걸어보는데 어떠세요?"

"지난달보다 허리에 힘 들어가는 것도 덜하고, 골반도 덜 빠지는 것 같아요."

"그쵸? 지난달보다 확실히 좋아진 게 눈에 보여서 너무 뿌듯해요."

"다 훌륭한 치료사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아 알죠 알죠."


이어지는 무릎을 꿇은 채 앉았다 일어나기.

이전엔 한 개를 해냈다에 만족했다면, 지금은 5~6개 정돈 골반이 빠지지 않은 채 수행이 가능해졌다.

하고 나면 땡땡해지는 허벅지와 엉덩이.


"선생님, 이거하고 나면 왼쪽 엉덩이에 저릿한 느낌이 와요."

"거기 힘 잘 들어오고 있다는 거예요. 자 다시 열 개 시작~"


근전도검사는 근전도검사고, 당장 해야 하는 건 해야 할 터.

백날천날 땅을 치며 억울해해 봐야 뭐 달라지는 게 있으랴?

지금 당장 내가 이 길랭바레증후군을 넘어서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재활치료에 전념하는 것뿐.

정신 무너지더라도 몸은 움직여야 한다.


'망가진 신경이 돌아오긴 할까?'

'진짜 퇴원은 할 수 있는 건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언제쯤 다시 출퇴근을 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오긴 할까?'


이런 생각이 안 든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근전도검사 결과 소식이 희망찬 것도 아니었기에 기분이 지하실로 곤두박질 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회복이 더디다고 아무것도 안 한 채 계속 우울해봐야 나한테 좋을 건 하나 없으니, 그냥 덤덤히 스스로를 케어하는 수밖에.

이 또한 지나가겠지 뭐.




친구들이 사식을 넣어준다.

이번엔 주스와 떡볶이.

떡볶이는 중간맛으로 사 왔다는데, 맵찔이에겐 한없이 맵기만 하다. 땀 뻘뻘 흘려가며 겨우겨우 떡볶이를 해치운다.

병원에서 주는 떡 2개짜리 떡볶이가 아닌, 진짜 떡볶이 다운 떡볶이를 오랜만에 맛본 날.

단무지를 먹어도 매운 게 가시질 않는다.




일요일 저녁, TV에 익숙한 캐릭터가 하나 나온다.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찬다.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다름 아닌 펭수.

열린음악회에 등장하여 요들송 '헤이리 처녀'와 토이스토리 OST 'You've got a friend in me'를 부른다.

요들송은 진짜 기깔나게 부른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곡이라니.

펭수와 뮤지컬 <마틸다> 팀이 나와 무대를 채운다. 아.. 마틸다 보고싶다.


거기에 뮤지컬 <마틸다> 팀이 나와 넘버 두 곡으로 무대를 채운다.

<Naughty>와 <Revolting Children>.

지난 2018년 11월, LG 아트센터에서 처음 봤던 마틸다. 이번에 다시 진행된단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가고 싶었던 뮤지컬이었던가.

23년 2월까지 뮤지컬이 진행된다는데, 마지막 무대가 막을 내리기 전에 꼭 보고 싶단 소망을 품어본다.

(근데 대개 소망은 소망으로만 끝나더라.)


221204 열린음악회 뮤지컬 < 마틸다 - Naughty>


221204 열린음악회 뮤지컬 <마틸다 - Revloting Children>


이 무대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주말이 지나간다.

예상보다 많이 더딘 회복에 다시금 무너져가는 나의 정신.

그래봐야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재활스케줄을 충실히 소화하는 것.

그럼에도 과연 회복이 될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과 불신.

막막함과 불신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론 이렇게 탓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남들이 대신해주지 않는다.

오롯이 내가 나를 다잡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어찌 됐든 간에 이건 내 시간이고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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