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에 마주하게 된 작품. 창작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
길랭바레증후군이라는 자가면역 질환으로 인해 말초신경이 녹고, 근육이 없어지며 제대로 된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내 삶엔 많은 제약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당장 제대로 서는 것조차 힘들어지면서, 이동에 대한 제약이 생기기 시작했고, 출퇴근이 불가능해지며 직장을 자연스레 잃어버렸다. 자연스레 붙잡고 있던 정신줄 역시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위안이랍시고 다가오는 말들은 위안은 커녕 그들에 대한 반발심만을 키워오던 때.
두 발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때 가끔 즐겼던 공연과 전시 등을 볼 수 없다는 상실감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몇 년 전 재밌게 봤던 뮤지컬이 재공연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으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서러웠고, TV에서 뮤지컬 두 개 넘버의 무대가 연출되는 것을 보며 더욱 서러운 감정이 복받쳐 오르며 펑펑 울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번에 관람한 창작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의 '조반니'란 인물 역시 그러한 상실감을 안은 채 삶을 살아가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창작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의 2021년 실황 영상을 볼 수 있다.
어릴 적 사고로 인한 실명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조반니. 마을은 은하수 축제를 준비하고 있던 한창인 때에 반해, 조반니는 '어차피 보이지 않는데 축제에 간들 뭐 해'라는 일념으로 점자책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인쇄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희망 혹은 자신이 하고픈 것을 하고자 하려는 찰나, 매 번 그의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지레 좌절, 포기하는 대목을 볼 수 있다.
그때 그의 친구인 캄파넬라가 등장, 조반니에게 말한다.
"너도 누릴 자격이 있어. 한 번쯤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동시에 은하수 축제를 즐기고 싶다면 언덕에 올라 자신의 이름을 외쳐달라 하고 사라지는 그. 캄파넬라.
그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이 동했던 것일까. 은하수 축제를 즐기기 위해 언덕으로 올라가는 조반니.
하지만 그를 마주하고 있던 것 동급생의 괴롭힘이었다. 괴롭힘을 피해 도망치던 중 방향 감각을 잃어 호숫가에 들어간 조반니와 그를 구해준 캄파넬라.
캄파넬라와 함께 축제를 즐기던 중 갑작스런 섬광과 함께 의식을 잃게 되고 만다.
의식을 잃은 그가 눈을 뜬 곳은 '은하철도 999호'.
그곳에서부터 은하철도 999호와 함께 플라이오세 해안, 백조자리 역, 거문고자리 역, 전갈자리 역 등을 지나며 남십자성의 상실의 섬에 있는 백작이자 자신의 아버지 '피에르'를 찾는 여정에 오른다.
각 별자리 역마다 무대 배경엔 해당 별자리가 그려진다. 백조자리 역엔 백조자리, 거문고자리 역엔 거문고자리, 전갈자리 역엔 전갈자리 등. 별자리가 가져다주는 감성 덕이었을까? 덕분에 무대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기분이 든다.
열차가 정차하는 각 역마다 개성 넘치는 뮤지컬 넘버가 흐른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거문고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넘버. 거문고자리 역에선 거문고자리와 관련된 그리스로마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넘버가 흘러나온다.
지옥에 있는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제 발로 지옥을 찾아간 오르페우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로 아내 에우리디케와 함께 지옥을 빠져나갈 기회를 얻게 된 오르페우스. 단, 지옥을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말 것.
에우리디케는 그의 뒤를 따라갈 테니 '절대 의심하지 말 것'. 하지만 자신의 의심을 지우지 못한 채 뒤돌아보는 오르페우스. 그로 인해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만날 수 없게 된다.
이 넘버의 어두운 분위기는 후에 조반니 스스로의 내면 심리를 이야기하는 넘버에도 한 차례 더 인용된다.
실명되어 어둠뿐인 현실에 갇힌, 끝없는 어둠과 공포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 모른 채 방황하는 스스로를 이야기한다.
예기치 못한 병으로 인해 일상을 잃어버린 나. 발병 초기, 애써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밝은 척했던, 내면 속 심연을 마주했을 때 무너져 내리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괜스레 코 끝이 찡해온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간간이 찾아오는 무기력감과 막연함, 공허함에 사로잡힐 때면 끝없는 심연으로 파고들어 가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구나.
그때 캄파넬라를 만나 심연을 극복해 가는 조반니.
"잘 해낼 거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캄파넬라가 해주는 모험심 가득한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 조반니. 그런 캄파넬라와 함께 '은하철도 999호'를 타고 끝내 남십자성 상실의 섬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피에르'를 구출해 내는 데 성공한다.
아버지 '피에르'를 상실의 섬에 가둔 것은 곧 조반니, 자신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아버지를 기억의 섬으로 옮기며 극은 막을 내린다.
조반니에게 캄파넬라는 삶의 큰 버팀목과 같은 존재로 비춰진다.
캄파넬라의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를 듣고, 그가 떠나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할 때 조반니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다녀와서 말해줘. 지금처럼 생생하게."
심연에 빠질 때마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견뎌내 왔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나.
조반니와 캄파넬라는 어쩌면 내가 투영하고 싶은 인물들인 건 아니었을까.
때론 조반니가 되어 어두운 내면에 잠식되다가도, 때론 캄파넬라가 되어 스스로에게 삶의 무언가를 불어넣어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