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의 책장 #7 <세이노의 가르침 - 세이노>
사견으로 시작하자면, 난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실은 쥐뿔도 없고 허황된 주장만 가득한 그런 내용이 대다수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을 어쩌다 접하게 될 때면 책의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내용조차 기억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할 적이면(근데 책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당장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이.. 있나? 내 주변엔 없다. 책 좋아한다? 열에 아홉은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행태더라.) 그런 책들을 '나무에게 미안한 책'이라 말하곤 한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이 있다면 '나무에게 미안한 책'이라는 말을 듣는 상대방은 이 말의 뜻을 단박에 알아채고 표현이 신기하다며 웃는다는 것.
그만큼 우리 도처엔 나무에게 미안한 책들이 수두룩 빽빽 쌓여있다는 반증 아닐까?
사견은 이쯤에서 끝맺음 짓도록 하고, 이 책을 처음 만난 시점을 풀어본다.
행정복지센터에 장애인 등록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잠시 서점에 들렀다. 어렸을 때부터 종종 이용하던, 옆 아파트 단지에 있는, 인근 동네에선 가장 큰 규모의 서점. 해당 서점의 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이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흰 바탕에 자전거 하나, 텍스트 몇 개. 형형색색 한 요즘 것들의 표지와는 사뭇 다른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자리에서 펼쳐 바로 도입부를 읽어보는 순간 이건 꼭 사야 함을 느낀 순간.
<세이노의 가르침>은 '세이노'라는 사람이 자신의 카페와 매거진, 신문 등에 기고한 글을 갈무리하여 인쇄된 출판물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천 억 원대 자산가임을 밝히고 있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서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많았다.
그중 하나는 자기 책임과 관련된 내용을 자신의 운전기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풀어내는 부분이다. 대개의 운전기사는 비 예보가 있는 날이면 어차피 비 오면 더러워질 차이기에 닦지 않았던 반면, 어느 한 명의 운전기사는 일기예보와는 관계없이 차를 항상 깨끗하게 유지했다는 것이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차량 유지보수관리 영역을 꾸준히 수행했던 이 운전기사는 저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영업팀으로 스카웃됐고, 회사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영업하는 법을 터득하며 퇴사 후 자신의 사업장을 차리고 독립했다.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로정신 아닐까?
덩달아 화장실 청소와 관련된 견해를 제시하였는데,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 보면 어딜 가나 화장실 청소 점검표가 하나씩은 붙어있기 마련이다.
화장실 청소 그거 뭐 물 뿌리고 바닥 닦고, 변기 닦고, 쓰레기통 비우고, 세면대 닦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정작 점검표가 붙어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군가는 그 화장실 청소와 관련된 업무를 잊어버리고 수행하기 때문이란다.
이 짧은 구절을 읽는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 맞네. 누군가는 놓치는 부분이 있기에 이를 매뉴얼로 만들어 붙여놓은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실수 없이 꼼꼼하게 처리하는 프로정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생각한 에피소드이다.
바로 대한항공 땅콩회항으로 세간에 큰 주목을 받았던 그 사건. 언론도 그렇고 나도 그랬고 내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엔 사무장에게 무어라 소리치고 회항한 그 사람에게 질타를 보내기 바빴다.
고작 땅콩을 부사장이 스스로 뜯게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런 처사를 해야 할 것이었냐고.
물론 저자도 이를 분명하게 비판한다. 사무장을 질타할 수는 있으나 회항까지 하며 질타를 한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 다만 저자는 이 사건이 일어난 계기에 대해 의문을 보낸다.
땅콩을 고객이 직접 뜯게끔 서비스를 제공한 '대상'이 다름 아닌 퍼스트 클래스 고객이라는 셈이다.
항공사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에게 서비스 응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 심지어 회사 내부 임원에게 이렇게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여타 승객들에겐 어떤 식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이 방면에 대해선 미쳐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경험해 본 바 전혀 없기 때문. 내가 바로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마지막으로 저자는 당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닮아가지 말라 얘기한다.
이건 평소에도 많이 생각하는 경우인데, 꼴불견인 사람을 볼 때마다 저렇게 늙어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품성을 따라가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하는 작자들의 행태를 반면교사 삼아 저것만큼은 피해야겠다는 생각.
입원 기간이 약 1년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 정말 매일같이 다짐하는 생각을 여기서도 맞이할 수 있어 한편으론 반갑기도 했다.
이 책이 맘에 들었던 것은 그 표현이 날 것 그대로라는 데 있다. 그 날 것이 진짜 펄떡거리는 생선 그 자체라서 누군가에겐 거북함이 들 수 있으나, '나무에게 미안한 책'들에 비하면야 개인적으론 훨씬 마음에 든다. 아니 그런 것들이랑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해질 정도이다.
무엇보다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는 책 임에도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성격, 성향이 다르고 현재의 환경이 다르므로 굳이 나의 삶을 카피하진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말을 끝으로 책을 매듭짓는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내가 나 자신을 직시하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면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경험의 연장선상에 녹아 있다. 생의 현장에 부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온전히 체험할 때에 생의 깊이가 깊어진다고 믿는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난 이렇게 살아왔으니 이러한 점을 유의하면 좋다. 다만, 네 환경에 맞추어 대입하고 응용하면 좋을 것이다.'
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감히 나무에게 미안한 책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이다.
주변에 힘들다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스트레스 투성이라고, 맨날 돈 없다고 찡찡거리는 사람들(은근 자랑하는 밥맛들에게도 선물해 보자)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찡얼거리는 건 괜찮다. 다만 찡일거리기만 하지 마라.
※ PDF는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