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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한 밍 Jun 21. 2023

만만한 듯 만만하지 않은, 그렇기에 교양과학입니다.

밍의 책장 #8 <이과형의 만만한 과학책 - 이과형>

○ 만만한 듯, 결코 만만하지 않은


"네 글 보니까 책 선물 받는 거 같더라. 그래서 준비했어. 근데 어린 왕자 포장 상자는 없더라."


  병문안을 온 친구가 병원에서 읽으라며 건넨 책 선물과 함께 건넨 말 한마디. 물리는 전공했음에도 언제나 교양과학에 목말라있는 나에게 값진 책 한 권이 생겼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포장 상자 안의 표지를 봄과 동시에 단박에 알아챘다.


"이거 혹시 그 유투버 이과형 책이야?"

"어 맞아. 너 아는구나?"

"그런데 이것은 틀렸습니다!로 유명한 사람이잖아. 영상 재밌게 잘 만들더라. 재밌게 잘 읽을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포장 상자 속 들어있던 <이과형의 만만한 과학책>


그런데 이것은 틀렸습니다


  책에선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연금술, 영혼의 무게, 통나무 들고 다리 건너기 문제, 유전자 가위, 뇌 과학, 상대성 이론 등. 예부터 다뤄져 온 주제뿐만 아니라, 힉스입자와 상대성 이론 등 최신 과학범주까지 고루고루 다루고 있다. 덩달아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봄직한 에피소드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과학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흐름을 갖고 있다.

[주제에 대한 에피소드 - 에피소드와 관련된 과학적 지식 - 마무리(저자의 생각 등)]

  에피소드를 제시하여 주제에 대한 흥미를 예열시키고 그에 대한 지식을 나열한 후 저자의 생각을 기재하며 매 주제를 마무리한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느껴진다. 과학을 전공하고,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다. 화려함만을 강조하여 본질을 놓치는 것이 아닌, 담백한 구성을 통해 과학 본연의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중 한 가지만 꼽아보도록 하겠다.

→ 통나무 들고 다리 건너기

도덕 교과서에 실려있는 통나무 들고 다리 건너기 문제


  한 때 인터넷에서 관심을 받았던 통나무 들고 다리를 건너는 문제이다. 해당 사진은 도덕 교과서에 실려있는데, 사람이 힘을 합하면 다리를 건널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번 상상해 보자. 세 사람의 키와 힘, 체격 등은 모두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통나무의 밀도는 동일하다고 가정해 보자. 이 세 사람은 사진처럼 통나무를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못 건넌다.


  2번의 사진으로 들어가는 순간, 맨 뒷사람은 자신이 들고 있는 통나무가 위로 솟구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로 힘을 주어야 한다. 즉 통나무에 매달려있는 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럼 그 힘은 누가 다 받아주어야 하는가? 바로 가운데 사람이다. 가운데 사람은 자신의 앞뒤에 해당하는 사람의 무게를 견뎌내야만 무사히 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세 사람의 힘이 같다는 전제 하에선.. 다리를 건너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나 다름없다. 오히려 저자의 의견처럼 혼자 짊어진 채 다리를 뛰어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사담으로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을 땐 전공 선택 수업이었던 '물리학의 개념과 역사' 시간이 떠올랐다. 당시 기말고사 마지막 문제가 '과학자들이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매질이 에테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반박하는 것에 대해 서술하시오.'였다.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에테르 존재에 반증하는 것이었음을 서술하면 됐을 것을... 아무런 생각 없이 내 주관을 주욱 나열했다가, 밍 학생이 서술한 내용은 반증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교수님의 피드백이 있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 답안지에 그여 있는 그 빨간 줄이란.. 허허

(책 중에도 마이컬슨-몰리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교양'과학이기 때문에 수식은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정성적인 범주에 대해 대략 이렇구나~ 정도의 아이디어만 맛보기 할 수 있다. 이 점은 아쉽긴 하지만, 수식이 들어가는 순간 그건 더 이상 교양과학의 범주가 아니게 된다. 어쩌면 교양과학이 평생토록 가져가야 할 딜레마 같은 건 아닐까.

(개인적으로 양자역학과 관련된 것은 반드시 수식을 통해서만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수식이 없기에 거부감 없이, 즐겁게 과학을 마주할 수 있진 않을까 싶다. 글을 읽으며 상상하는 즐거움에서 출발하는 과학. 이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상상인가!


  과학책을 읽는다는 것은 실로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다.

만만한 듯, 결코 만만하지 않은 그것이 과학의 세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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