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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날.

<퇴원>

by 밍밍한 밍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응급실을 거쳐 입원했을 때, 하루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던 그날. 퇴원하는 날.


"밍아 엄청 신나지 않아? 진짜 감회가 새롭겠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여기저기 퇴원 소식을 전함과 함께 가장 많이 들었던 문장이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묵은 체중이 싹 가신 듯한 벅찬 감격이 온몸을 휘감아 돌 줄 알았다. 지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애태우며 기다렸던 그날이었던가. 하지만 나의 현실적인 감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주치의로부터 처음 '퇴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설렘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간호병동은 물론이거니와 마주치는 치료사들마다 다음 달에 퇴원한다며 자랑하기 바빴고, 지인들에게도 조만간 퇴원한다는 소식을 전해주기 바빴다. 그 감정은 약 이틀정도 지속됐다. 막연함만이 가득했던 입원 생활 중 가장 큰 빛줄기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틀 후, 현실의 냉정함을 마주했다. 퇴원은 퇴원이고, 그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재활스케줄에 맞춰 운동하고 있고, 치료사들의 보조 하에 안전하게 자세 하나하나를 수행하고 있는 반면 퇴원 후엔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하지? 그것보다 직장은 어떡하지? 이 다리로 출퇴근을 할 순 있나? 아니 그전에 뽑아줄 곳이 있긴 있나? 우선 서류부터 넣어보자. 그럼 경력기술서를 먼저 다듬어야겠네. 집은 본가에 들어가 있다가 직장 구하면 바로 자취할 곳을 알아봐야겠다. 그런데 생활비는 어떡하지? 실업급여 알아봐야겠네.


운동, 커리어, 거주지 등등. 수많은 생각들이 범람하기 시작했고, 이내 생각하는 걸 그만두게 됐다. 지금 생각해 봐야 해결될 것도 아니다. 때가 되면 생각하자. 그와 함께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헤쳐 나가기로 다짐하며 행동으로 옮겼다. 경력기술서, 자기소개서 작성 및 수정과 서류 지원. 퇴원까지 한 달을 앞둔 시점에서 서류 지원을 시작하며 퇴원 이후 맞이할 현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경력기술서와 자소서는 쓸 때마다 매 번 새롭다.




퇴원하는 날, 그날의 감정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가는 여느 날과 다르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저 서류 결과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고, 그저 잠을 자는 곳이 병원에서 본가의 내 방으로 옮겨갔다는 것뿐이었다. 물리적 환경의 변화는 있었으나, 심리적 변화는 없었다. 이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가? 이게 어른이라면 좀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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