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작을 앞두고, 공연장 스피커에선 하나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 멜로디 리플릿 뒷면에 있는 멜로디인 거 같지 않아요?"
"혹시 절대음감이세요?"
"아? 이게 이렇게 전개가 되나요?"
공연을 보여주신 일행분께서 건네주신 말 덕분일까.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공연을 본다는 것에 조금은 긴장해 있던 몸과 마음이 싹 풀어지며, 공연 볼 채비를 마무리한다.
공연 관람 안내 멘트가 흘러나오고, 무대 조명이 꺼지며 뮤지컬은 시작된다.
음악을 하고 싶은 '연수'. 하지만 그녀의 아빠 '이암'은 그녀에게 있어 자신을 억압하고 옥죄는 절대적인 존재로만 비친다. 원하는 대학의 실용음악과에 합격했음에도 선뜻 아빠 '이암'의 존재로 인해 진학하지 못할 거란 마음에 속상해하며 <Someday>라는 바에서 칵테일 '애플 마티니'를 마시며 바의 주인인 '우연희'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적어둔 가사가 있는 다이어리에 의해 연수는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연수가 도착한 시간대는 자신의 아빠, '이암'이 스무 살이었던 때였다. 다행히 스무 살의 이암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직접 자작곡을 만들고 부르는 것뿐 아니라, 오디션을 다니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이암의 모습에 반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지해'. 작가 지망생인 그녀는 이암에게 자신이 가사를 써줄 테니 함께 부르자는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사랑을 키워간다.
이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 데 성공하나, 태생부터 몸이 약한 지해에게 약간의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연수와 연희. 연수와 연희, 이암 그리고 지해는 그들이 직면한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하며 연수의 시간여행도 매듭짓는다.
아빠의 옥죔에 숨 막혀하는 연수를 보며 많이 공감했다.
늘 '공부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던 과거의 조각들. 스무 살이 되면, 대학에 가면 하고 싶은 것 맘껏 할 수 있다는 그 말과 행동들이 스쳐 지나간다.
극이 전개되며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그 감정을 표출하는 넘버에 맞춰 함께 웃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런 감동적인 뮤지컬이었다.
무엇보다 뮤지컬의 전개와는 별개로 지난 나의 경험이 뮤지컬 넘버의 구절과 맞물리며 나의 감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무대가 시작되며 흘러나오는 넘버 <Someday>
"지금을 기억할게~ 순간이 모여~ 처음이 된 그때 그 어느 날~"
무대의 초반부를 채워주는 넘버를 듣는 그 순간부터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어느 때보다 와닿았던 구절. '순간이 모여 처음이 된 그때 그 어느 날.'
구절이 귀에 들어옴과 동시에 지난 1년 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흐르기 시작한다.
예고 없이 급작스레 찾아온 길랭바레증후군. 발가락에서부터 시작한 마비증세는 기립근까지 올라오며, 지난 수 십 년 간 걷고 뛰었던 나의 삶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그렇게 8월 초입부터 시작된 병원 입원생활. 한동안 병실 침대와 휠체어만을 오가며, 과연 내 두 다리로 다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긴 하는 것일까에 대한 두려움과 알 수 없는 퇴원일로부터 오는 막연함.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어느덧 퇴원을 하고, 다시 일상을 조금씩 영위하기 시작하며 나의 두 발로 공연장을 찾아와 다시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이 다가왔다.
'순간이 모여 처음이 된 그때 그 어느 날.'
연수는 20년 전의 이암을 만나 Someday를 이야기했다면, 나는 작년 이맘때쯤의 나에게로 돌아가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퇴원일을 알 수 없다는 까마득한 막연함과 마음대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막막함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모여 다시 처음이 된 그때 그 어느 날, Someday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