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번호 표시제한과 컬러링

나 대신, 하고 싶은 말을 아름답게 꾸며 본다

by 새벽뜰


당신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얼굴을 세상에 보여 주려고 하든 관계없이, 당신의 마음 상태와 감정 상태를 숨길 수는 없다. 누구든지 자신의 내면 상태에 해당하는 에너지 장을 내뿜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상대방이 내뿜는 에너지를 감지한다. 상대방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그것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에그 하르크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中>



컬러링을 새 노래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전 음악으로 다시 바꿨다. 큰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닌데 의외로 난 컬러링을 재설정하는 일에 열심이다. 어차피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올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 편이고 나이로 배를 불려 갈 무렵부터 좁아진 인간관계임에도 잊을만하면 컬러링을 바꿔 보곤 한다. 통화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보니 가장 빨리 변화를 눈치채는 것도 남편이다. "컬러링 바꿨네?" 하면 "응, 한 번 바꿔봤어. 지겨운 것 같아서. " 하는 대화가 어색하지 않다.


아주 깊은 새벽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어서 공교롭게도 걸려온 전화가 끊어질 때까지 오도카니 바라보게 되었다. 떠오르는 여덟 글자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 사실 받을 마음은 0%에 가까웠지만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과 상상을 했다. 이 깊은 새벽에 굳이 이렇게 까지 하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올 사람이 누굴까. 의미가 없이 넘기려도 그럴 수가 있었고 의미 있게 받아들여 어렵지 않게 "여보세요?" 하고 목소리를 내었어도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직감이란 게 그랬다. 술 취한 사람이 내 번호를 잘못 눌려 걸려온 전화는 아닐 것이며, 결혼한 친구가 육아에서 벗어난 시간, 망설이며 나에게 위로받고 싶어 건 전화는 더욱이 아닐 것이다. 휘청이는 걸음도 버거운데 표시제한 방법까지 실행해 가며 그러기는 어렵지, 친군데 굳이 이름을 숨길 이유는 뭐고. 중요한 건 육아는 새벽을 허락할 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짬이 난다 한들 얼른얼른 잠을 더 자둬 에너지 비축을 해둬야 할 수 있는 일인데 그 새벽에 전화가 웬 말. 그래, 그래서 나는 , 그냥 그랬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컬러링이 갖고 있는 의무는 사람들에게 설정하고 싶도록 마음 환심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엔 좋아하는 노래가 컬러링이 되는 때가 많다. 나는 가사에 충실한 편이고 선율에 민감한 편이라 좋아하는 노래도 보편적이지는 않고 아는 사람만 아는 경우가 많다. "이런 노래도 있었어?" , "노래 좋더라. 제목이 뭐야?" 종종 듣게 되는 이유도 모두 아는 노래 그래서 유행하는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선했을 것이다.




점점 더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를 숨기게 된다. 내 속에 있어 묵음 처리된 이야기는 많지만 순수하게 공감해주는 사람은 점점 더 고갈되어 갔다. 내 이야기는 의도치 않게 상대방으로 하여금 동정을 사게 되기도 하고 공감을 가장한 자기 위안으로 받아들여서 "너보단 내가 낫다. " 하는 식으로 마음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가장 최악인 건 바라지도 않은 충고를 조언이라는 말에 빗대어 줄줄 해대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 치고 내 눈에 모범되게 사는 사람 아무도 못 봤다. 그럴 때마다 "지 인생이나 똑바로 살지. 애먼 데 와서 충고질이야. " 하는 생각뿐. 힘든 일 없냐고 굳이 굳이 캐물어서 없다고 하면 재수 없을까 봐 한 조각 애써 꺼내 놨더니 돌아오는 게 저런 식이면 그 입을 꿰매고 싶을 수밖에.

그런 거다. 나에게 컬러링은 하고 싶지만 다 못하게 되는 내 마음속 말들을 좋은 목소리로 나 대신 상대방에게 전해주는 서글픈 수단 같은 것. 과거 미래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내 마음을 표현해주는 좋은 수단. 40초에서 60초 되는 사이의 말들을 들으며 누군가는 또 다른 가지를 치며 생각에 빠질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흘려도 듣겠지만. 그래, 많은 말을 해본들 많은 말을 꽉 채워 이해해 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름다운 말로 시적 허용하듯 내뱉는 말이 차라리 내 마음이다 하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