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게 살고 싶단 확실한 고백

무위도식 안빈낙도의 삶이 정말 가능할까

by 새벽뜰


힘든 오늘 하루도 지나갔다.
오늘도 잘 넘겼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사람들은 말하곤 해요.
하지만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입니다.

<신준모, 이 또한 지나가리라 中>



가만히 누워서 기억을 더듬어 봤더니 문득 의문이 일었다. "어떻게 살고 싶어?" 라던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질문을 왜 나에겐 많이 해주지 않은 거지? 하는 의문이었다. 나는 타인들에게 곧 잘하는 질문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왜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는 건지. 혼자선 겉도는 답뿐이라 친한 친구에게 물었고 돌아온 답은 나에게 물음표를 주었다. "넌 잘 살 것 같아서? 열심히 잘 살고 있으니까. 왜? 너도 고민 있냐?"


열심히 살고 부지런히 살았던 것 같은데 노력에 비례한 만큼의 대가는 모두 돌아오지 않은 느낌이 된 지 꽤 됐다. 마치 전 재산의 반 이상을 빌려주고 다 회수받지 못한 느낌이랄까. 더 우울하고 울적한 날은 내가 돈 빌려준 사람이 행방불명이라 오히려 돈 떼먹고 날른 나쁜 인간을 걱정해줘야 하는 난장판 소굴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다. 백 퍼센트 위로와 공감을 받지는 못하는 상황이니까.


무위도식 안빈낙도의 삶을 언제부턴가 바라게 됐다. 유유자적하니 한량으로 살아도 너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에 아주 깊숙이 자리 잡게 된 데는 늘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인생에서 나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대기발령 중인 채로 서성인다는 기분을 느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대기발령 난 사람이 매번 행복하게 잘 있을 수는 없는 법이지. 미래는 더 불안하고 어쨌든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고 맡은 바 소임은 충실히 잘해야 하는 거니까. 무위도식 안빈낙도하는 삶을 나만 바라는 건 아닐 거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꿈이고 상상 속에 가장 바라는 최상의 삶 아닐까.

직장 퇴사를 앞두고 가장 많이 듣던 말은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좀 쉬고 하고 싶은 것도 좀 하고." 그래. 나 정말 수고했다. 시답잖은 갑님에게 을 노릇 하면서 일했고 내 감정이 안에서 썩어 문드러지든 말든 겉모습은 반짝반짝 항상 행복합니다. 하는 얼굴로 직장생활이란 걸 했어야 했다. 처음 그렇게 퇴사 후 얼마간은 정말 꿈같았는데 이것도 일주일을 넘기니 몸이 찌뿌둥해져 앞날을 고민하게 됐다. 몇 년을 일했는데 왜, 고작 한 달도 안된 시간을 쉬면서 무료하다느니 나태해진다느니 하는 말들을 되뇌게 되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위도식하며 안빈낙도하는 삶을 한몇 년 간은 살아보고 싶다는 거다. 그렇게 사는 와중이면 목숨처럼 일하는 직장도 주 5일 열심히 일하다 맞이 하는 주말처럼 설렘을 온몸에 휘감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나를 까내리는 시답잖은 상사에게도 "그래. 사는 게 얼마나 빡빡하면 나에게 저럴까." 하며 아주 대인배 아우라를 풍기며 "녜녜"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말이다.




편안히 살고 싶은 아주 솔직한 마음은 항상 존재 하지만 난 또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모두 괜찮다고 해도 왠지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의심과 하루 종일 싸우게 될지도 모르지. 건강한 돼지가 되는 걸까 혹은 이렇게 의미 없이 내 한 시절이 가는 걸까 아니면 나만 낙오되는 거 아닐까 하는 잡다한 생각에 바쁠 때보다 더 머릿속이 번잡해질 것도 같다. 이렇게 물 흐르는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환상을 포기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환상을 찾아서 또 열심히 사는 거다. 뼈 빠지게 일하고 얻은 휴식은 딱 이런 느낌이지 않던가. 무위도식 안빈낙도 , 한량 같은 인생이라, 상상만으로도 , 아주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