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진심인 건지, 습관인 건지

다 식은 커피 일지라도 여전히 위로가 된다

by 새벽뜰


나는 지금 원고 작업을 마치고,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하루키 단골 바에 들러 그가 사랑하는 블러디 메리 칵테일도 맛봤다.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 마시거나 바에서 칵테일 한잔 하는 건 어쩌면 하루키 소설의 문장 하나를 읽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조승원,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中>



커피를 좋아하든 아니든 커피머신 없는 사람이 드문 요즘이다. 더치커피, 콜드브루, 아메리카노 등등 커피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는 너무 오래됐다. 나 역시 커피를 아주 좋아하는 현대인이긴 하지만 입맛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채로 있는 , 싸구려 커피에 제대로 중독된 무늬만 현대인이다. 엄밀히 말하면 커피에 중독 이라기보다 카페인에 중독됐다는 말이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아침에 눈 떠 가장 먼저 아기에게 우유를 데워주고 난 후 나는 부리나케 커피를 끓여 마신다. 달콤 쌉싸름한 커피가 목을 넘어가면 잔뜩 구겨진듯한 몸이 천천히 펴지는 느낌이 든다. 꼬깃꼬깃한 몸이 다림질한 것 같이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에 커피가 없다면 나의 하루는 얼마나 더 고되었을까.


유난히 에스프레소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독 아메리카노 하나만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내 주위엔 아메리카노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늘 한결같고 유일한 취향을 고수하는 경향이 짙다.

나는 카페에 가면 취향이 조금 달라진다. 그곳엔 밀크커피가 존재하지 않으니 내 취향을 고집할 수는 없는 거다. 카페모카 또는 라떼를 주문하는 편인데 달콤 쌉싸름한 맛을 가장 잘 전달해주는 커피라고 생각해서다. 각자 맛은 다르지만 공통된 마음 하나는 어지간히 좋구나 하는 것이다.


커피 한 잔 하러 가자, 커피 마시고 일하자. 커피 어때? 하며 친근히 다가오는 사람이 나는 참 좋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했던,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은 다들 나처럼 싸구려 커피를 좋아했던 것 같다. 다른 품목의 취향은 대부분 고퀄리티를 고수하면서도 커피만큼은 참으로 인간적이었단 말이다. 가수 장기하도 말했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고.


글을 쓰면서도 커피를 마시는 건 허세를 부리는 행동이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작가들 옆엔 늘 커피잔이 놓여 있었고 그 심정을 몰랐을 땐 "어지간히 폼 잡네."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짬을 내, 시간을 부지런히 내어 글을 써보게 되니 커피가 얼마나 필요한 음료인지 뼈저리게 알겠더라. 커피 한 잔을 마실 동안만 생각이란 걸 해보자. 커피가 다 식을 동안만 가만히 되뇌어 보자. 커피 한 모금 마시며 마음을 쉬어 보자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자주, 타 놓은 커피를 잊었다. 그래서 생각나 보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왜 커피는 식어서 프림이 소용돌이치고 있어도 여전히 맛있는 건지. 왜, 식어서 버리고 다시 타고 싶어 지더라도 여전히 깊은 위로가 되는 건지. 습관이라도 어쩔 수 없다. 400T 커피는 내 위로의 일등 공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