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건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하루를 마음으로 곱씹으면서 한정된 감정단어로 표현하는 게 훨씬 더 쉽다. 좋든 아니든 하루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어릴 때는 내가 원하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그 말을 해줄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머리 꼭대기에 달면서부터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졌다. 그만큼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들도 점점 더 복잡해져 단순하지가 않았고 지하 암반수처럼 깊이가 있는 말들을 원하게 됐다. 나의 하루가 좋든 좋지 않든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누구도 나에게 내게 필요한 위로를 해주지 않으니까.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안다는 걸 믿어서, 내 마음에 쏙 드는 격려를 해주기 위함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듣는 비난의 소리는 생각보다 더 엄청난 상처와 혼란을 안겨 준다. 설령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낙인찍힌 채로 말을 한다면 아무리 아니다 해명을 해봐도 소용이 없어진다. 상대방이 본인의 말을 정답이라 믿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의 기준이 확고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흔들리면 상대방의 감정에 너무 쉽게 물이 든다. 상대의 말이 사실인 듯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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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를 비난하고 자신이 정답이라 믿는 상대방은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만큼 완벽한 사람일까. 멀리 가지 않아도 그의 단점과 문제점을 끝없이 나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한마디로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기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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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들에 마음이 대지진이 나는 듯 흔들리는 경험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관하듯 스스로를 자책하며 상대방 마음을 수긍할 필요는 없다. 여러 개의 단점이 커다란 장점 하나로 묻히는 수도 있고 여러 개의 장점이 단 하나의 단점에 묻힐 수도 있다. 무엇이 더 나은지는 개인의 취향과 선택의 문제이지만 스스로 살아온 모든 인생의 역사를 마치 '망한' 자인 듯 오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처음 살아 여기까지 온 마음이 왜 타인으로 인해 비난받고 아무것도 아닌 듯 취급받아야 할까. 내 것인 줄 알았던 마음은 아직 덜 여물어 팔랑귀처럼 보이는 것이고 그 마음은 내 편이 아닌 게 아니라 착함증에 빠져서 죄책감을 많이 느낄 뿐이다. 그러니 믿어야 한다. 나는 잘 살고 있어. 맑고 투명했던 마음에 이까짓 탄산 몇 방울 정도야 아름다운 무늬일 뿐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