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일에서 깨달음을 얻는 데에는 거창한 이유나 드라마틱한 상황은 필요하지가 않다. 깨달음과 마음 수양을 위해서 만기 된 적금통장을 들고 인도로 갈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깨달음에 커다란 추억을 벗 삼아야 한다면 아주 좋은 시간이 되겠지만.
난 육아에 대해선 항상 힘듦과 불만이 많아 자연스럽게 불평도 많았었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고 나를 희생함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일이란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던 그녀는 불현듯 딱 부러지게 말을 했다. '건강한 엄마라면 20개월짜리 아들이 날이 갈수록 잘 먹고 몸무게 늘어가고 방긋방긋 웃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지'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정말로 내 머리를 강타하는 목소리였다. '네 마음속 패턴이 네가 어떤 현실 속에 놓이든 고통스러운 것들을 찾아내어서 스스로를 괴롭히게 작동하는 거야.'
내 마음이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과 내가 내 마음에게 속임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희한한 모양으로 버무려져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마치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부정과 긍정이 있다면 나는 생각도 없이 자연스럽게 부정을 택하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 천둥이 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를 탓하거나 혼을 내는 말투가 절대 아니었다. 그저 담담했고 평온했다. 그 혼냄과 호통은 과연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내가 사랑하는 네가 좋아하는 자동차
바깥은 별 문제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 안의 곪아 썩은 마음이 문제였던 건 확실한 것 같지만.
그날 이후, 마음을 잘 여미고 다니려 노력 중이다. 재밌는 건, 나를 똑바로 보기 시작하니 나를 둘러싼 상황이 아주 괜찮은 , 포근한 봄날 속에 파묻혀 있었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단 사실이다. 동굴에서 겨울을 살게 했던 건 어느 누구도 아닌 ,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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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는 데에는 거창한 이유나 드라마틱한 상황은 필요하지가 않다. 깨달음과 마음 수양을 위해서 만기 된 적금통장을 들고 인도로 갈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깨달음에 커다란 추억을 벗 삼아야 한다면 아주 좋은 시간이 되겠지만.
모든 건, 나로부터, 내 마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