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조건

진리를 깨닫는 순간

by 새벽뜰

어떤 사람이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그와 인연을 맺게 되지는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도 예외가 없다. 어릴수록 인연을 이어가고 엮어가는 전제조건의 수는 적다. 쟤고 따지고 나와 잘 맞을까, 식성은 어떨까, 성격이나 말투는 하는 식의 개인적인 전제조건을 확실히 덜 들이민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아이는 인연을 맺는 조건이 딱 하나였다. 잘생기면 됐다. 얼굴이 잘생기면 없던 느낌도 생기고 식성도 맞춰줄 수 있다고. 그 오빠가 내 느낌이고 그 친구 성격이 나와 찰떡이지.


덜 여문 마음을 가지고 사회에 나와 마음이 야무지게 단련될 즈음이 되면 많아봐야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랑 말랑하던 전제조건은 열 가지 스무 가지로 부풀어 넘쳐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두 가지 맞으면 좀 이어가 볼까 하는 사람을 옆에 두긴 하지만 그런 관계는 한 계절이 다 가기도 전에 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마음이 닿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한 전제조건이 잘못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상대방에게 실망하지 않고 서로가 필요할 때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진짜 좋은 관계. 상대방은 진정 나에게 마음을 연 것이 맞을까.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다. 그와 이야기를 할수록 버석한 마음이 되는 이유. 아마 그런 사람은 나에게 곁을 모두 내어주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와 상대가 뜨거운 인연을 맺으려면 불행의 공유가 꼭 필요하다. 내가 이만큼의 불행을 용기 내어 털어놨다면 상대방은 나보다 더 커다란 불행을 털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 괜한 친절을 베풀어서 마음이 상했던 적이 있다. 불편한 마음의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생각이 복잡했다. 그것은 괜한 친절에 상응하는 어떤 반응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음에 대한 불편이었다. 특별한 인연이 닿은 관계도 아니었지만 그 후로 쭉 상대를 보던 내 마음의 불편을 무시 않고 마주 봤다. 상대는 대부분의 일상을 '행복만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운 내' 라거나 '웃어봐' 한마디로만 마음이 나아지기엔 너무나 무력하고 복잡한 마음을 지닌 존재 아닌가. 좋은 시절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만 살다가 보면 좋지 못한 시절도 만나기 마련이다. 그럴 땐 상대를 보며 위로를 받긴커녕 비극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행복의 공유는 쉽지만 불행의 공유는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되고 당신이 된다면 우린 얼마나 깊은 관계가 될까. 어쩌면 짝사랑 상대에게 고백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감내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무게 속엔 이런 것도 포함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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