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뜰 Jun 27. 2023

이유 없이 사랑하고 싶은 이유

 조건이라는 말이 시작에 붙으면 참 계산적이 되는 것 같다.  세상 풍파에 흠뻑 젖어 때가 많이 묻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면이 조금은 필요하다는 생각도 틀린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내가 그를 처음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첫인상에 대한 느낌은 뚜렷했지만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사람은 겪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으니 섣불리 단정 지은 생각에서 괜한 상처받거나 오해를 하긴 싫었다.


 요즘엔 이유 없이 잘 살고 싶었고 이유 없이 편안하고 싶었다. 난 스스로에게 잔인하리만치 엄청난 기준점을 정해 놓고 살았다. 편안함에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였나 보다. 사는 게 썩 편하지 않았고 좋아할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질 때가 있었던 것이. 그냥 좋았던 마음에 자꾸만 이유를 갖다 붙이니 내가 하는 사랑이 참 싸게 느껴졌다.


 이유 없이 사랑하고 이유가 없이 안락하며  평온한 일상을 살아 보려고 나는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이유 없이 편안한 일상을 살면서 사랑을 하려고 노력 중인 것이다. 많은 이유를 갖다 붙여놓은 삶을 살다가 보니 이유를 떼어 놓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지치는지,  피곤한지 문득 깨닫게 되었다. 몸이 AI로봇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유연하지 못해 늘 긴장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골똘히 , 일부러 인식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좋아하는 그를 보면 좋아서 긴장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어려워서 긴장하고.  몸이 유연함을 잃고 있었다. 내가 잘하고 자신이 있는 일에서 까지도 이유 없는 편안함을 만끽하지 못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까지 긴장을 하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단 말이다.


 사랑 앞에 이유를 붙이지 않으면 사랑이 즐거워질 것 같았다. 실망할 것도 없고 과한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편안하다면  상대방에게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안한 사람이 되면 웃을 일이 많아진다. 난 원래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편안함을 공유하며 살기로 작정한 날부터 조금씩 더 가볍고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어 보려 했다. 감정이 마음에 남으면  이완시켜 흘러가도록 하고 붙잡지 말아야 할 것에 집착하지 않고 보내 주려고 했다. 이유 없이 편안해지려고 수많았던 이유들을 산산조각 내는 중.


 이유 없이 편안하고 이유 없이 사랑을 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인 자유가 내 일상에 찾아온다. 이유의 무게는 시지프스가 밀어 올리는 돌처럼 아주 무거운 것이니까.

이전 16화 우리는 꼭 다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