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을 이렇게 끈기 있고 차분하게 오랫동안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는 생각. 짝사랑을 오래 하면 마음이 피폐해진다거나 너무 힘이 들어서 일상이 건조해지기 쉽다고들 했다. 외사랑이 그렇지. 혼자만 퍼주고 내게 오는 건 없으니 마음은 점점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거라고.
짝사랑도 사랑이고 마음으로만 품는 사랑도 아름다운 사랑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짝사랑이란 것이 어떤 건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열아홉스물 대학교에서 만난 같은 과 친구를 좋아하게 됐었다. 좋아할수록 괴롭기만 할 뿐 설렘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종강을 하면서 그 친구는 군입대 준비를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모자를 쓰고 다녔고 그 후 나는 내가 선택한 대학이란 전공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어 완전히 다른 학교 다른 과로 새롭게 시작을 했었다. 그렇게 우린 영원한 작별을 했다. 버스에 앉아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친구는 불현듯 그런 말을 했었다. 너 오늘 되게 슬퍼 보인다. 그 말을 한 친구는 무려 남자였는데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날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너 , (이별한 사람처럼) 슬퍼 보여.
뭐든 해보면 는다고 했던가. 짝사랑도 그랬다. 나이를 먹고 시작한 짝사랑은 그래도 좀 편했다. 적어도 내가 고갈되어 사라질 정도로 상대방을 생각하지는 않게 됐다. 나의 일상을 나름대로 순조롭게 살았고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았다. 어떤 날에 그는 나에게 오아시스 같았고 어떤 날은 가장 어두운 밤하늘에 별 같은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텀이라는 것을 두게 되었고 그리워할 시간이 잘 만들어졌다. 애달팠지만 설렘으로 온 마음을 두른 날이 더 많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으므로.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사람을 통해서 배웠다. 괜한 기대보다 체념을 안전장치로 삼은 사랑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꼭 이뤄져야만 해 내 것이 되어야 해 이런 생각이 사실은 한 사람을 망가지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고. 특히나 상대방의 감정이 불투명한 짝사랑인 경우엔 더욱. 아무튼 나는 이런 마음으로 꽤 오랫동안 짝사랑을 했었다.
그 후 내게 남은 것은 사랑이 이루어졌습니다 같은 동화가 아니었다. 상황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도 그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호수처럼 편안해졌다는 것과 진정 그의 행복을 바랄 수 있었다는 것과 감정적인 만족의 폭이 굉장히 커졌다는 것. 그건 아마 사랑의 폭이 넓어졌다는 말이 되겠다. 그 자리에 잘 있는 사람을 가끔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만도 사랑, 컴퓨터 모니터 속 깜빡이는 내 이름에 커서를 올려두고 가만히 응시하던 그 사람을 보면서도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담담함. 모두 사랑의 폭이 넓어진 이유였다.
짝사랑을 하다 보니 내가 철학자가 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짝사랑을 한 걸까 마음공부를 한 걸까. 난 다만 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 하필이면 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