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그래야 하나 싶으면서도 굳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항상 마음으로만 상상했던 행동을 뭣 때문에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커다란 표현을 한 건 아니지만 나는 꼭 고백을 결심하다 실천으로 옮긴 사람처럼 비장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핑계가 좋았다. 공적인 관계에 의한 공적인 필요를 위해 나는 그를 찾아갔다. 이런 명제가 있으니 일부러 갔다는 뻔한 이유는 피할 수가 있었다. 내가 필요해서 그에게 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성립하고 발길을 떼니 울렁대던 마음도 좀 진정이 됐다. 그 사람이 뭘 좋아할지 알 수가 없으니 오로지 나의 감을 의지해야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점이 그가 있는 건물 바로 뒤편에 있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나는 정말 볼 일만 보고 집으로 가는 굉장히 착실한 모범사람이었구나 싶어서 살짝 웃음이 났다. 커피전문점이지만 커피를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뭐랄까. 너무 빨리 사라져 버릴 마음 같았달까. 커피 속 얼음이 녹아버리는 동안 그건 그냥 물이 될 것이고 그럼 그냥 버려질 것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커피는 너무 흔하니까. 조금 덜 흔한 것에 접근해 좀 더 오래 기억되고 싶었다고나 할까. 유지가 되고 잘 변하지 않는 모양이라면 좋을 것 같았다. 그에게 줄 작은 답례가 나와 동일시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한참을 고민하다 부담스럽지 않을 작은 케이크를 샀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마음이 묘했다.
기다림은 길고 만남은 짧지만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래서 억울했다거나 슬펐다가 아니라 그러니 지루한 시간이 아닐 수 있었지 어색할 순간이 짧아질 수도 있었지 하면서. 그를 알게 되면서 내가 점점 더 긍정적인 사고를 한다는 발견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그의 눈을 평소보다 좀 더 오래 보았던 것 같다. 처음 보는 눈도 아닌데 왜 문득 그날 그의 눈빛이 더 따뜻했다고 느꼈을까.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영이라는 것인가 했다. 서로가 질문을 하고 답을 하고 경쾌하고 유쾌한 박자감이 생겼다. 그렇게 마지막 대화를 나누며 불쑥 준비한 케이크를 그에게 전해주었던 거다. 그리 놀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놀라 어정쩡해 버리면 내 성격에 나는 또 어찌할지를 몰랐을 테니까. 내 예상 범주에 딱 맞게 행동하는 그 사람의 태도에 마음이 놓였다. 더 일찍 챙기고 싶었으나 그동안엔 경황이 없었다던 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케이크를 고르는 동안 생각했었다. 모든 일엔 타이밍 있다는데 하필 지금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모두 타이밍이 개입해 주고 있는 이유라는 생각.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용기라서 인지 그를 남겨두고 나오는 마음은 의외로 담담해서 편안했다.
정말 고백이라도 한 사람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내 마음 표현은 쏙 빼낸 희한한 고마움의 표시였어도 마치 해묵은 말을 모두 뱉어낸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난 또다시 어떤 깨달음으로 머리가 쭈뼜섰다. 관계에서 나는 늘 최선을 다했다 자부했었는데 그에게 무언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함으로써 나는 이제야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모두 다한 것 같다는 생각이 스민 것이다. 안타깝고 때로는 서글펐던 짝사랑의 무게가 너무 많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변함없이 나는 사랑을 고백할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사랑해서 좋았던 고마움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 이렇게 내게 자유를 주는구나 싶어 아주 놀라웠다. 마음을 받아주세요. 좋아합니다. 이런 고백다운 고백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발언은 서로의 감정들이 분명히 통하여 확인이 된 후에야 상처가 되지 않으므로.
마음이 달처럼 차니 행동이 되어 빛을 발했다. 비록 고맙다는 말이 전부인 사랑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