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수레바퀴처럼 만날 수밖에 없는 사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한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상 그건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될 거라고.
조금씩 흘러가는 인연처럼 나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처음처럼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좋은 거라고 말이다. 어떤 날은 욕심이 났고 어떤 날은 아무 의미 없는 사람 같았고 어떤 날은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의 정의를 굳이 말해보자면 마음이 쓸데없이 요동치지 않은 상태였다. 물처럼 편안하고 봄바람처럼 차분한 것을 의미했다. 말의 의미에서 너무 깊은 온도차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무 의미 없음이 그저 편안함의 상태를 말하는 것임을 불쑥 알아채고 있는 나였으므로.
태풍이 쓸고 간 후의 마을처럼 마음도 그럴 때가 있었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싸움으로 인한 폐단이었다.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을 두고 나는 왜 날아드는 까마귀 떼처럼 마음을 들쑤시고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곧 욕심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 땐 ,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리고 말았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내 옆으로 그가 나타났다. 아마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막 올라온 참인 듯했다. 내가 앉은 곳과 엘리베이터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도 않은 것에 반해 그는 뭔가를 참 열심히 찾고 있었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했을 땐 부리나케 고개를 돌리는 것을 알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난 허공에 인사를 하려 들었겠구나. 그의 행동을 보고 내가 한 생각이란 실로 단순했다. 저 사람 뭐지? 했던 것.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고객처럼 바로 찾아든 생각 때문에 한 번 더 바람 빠진 소리를 내어야 했다. 참 아이 같다. 싶었으니까. 마주 본 그는 너무 한결같았고 오히려 더 다정해진 모습으로 돌아와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에개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는 걸 다시금 알았다.
그를 알기 전 그 건물은 그냥 00동에 있는 00 건물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를 알고부터 그 동네 근처만 가도 그가 있는 곳과 가까운 어디. 어쩌면 그도 와봤을지 모를 커피숍처럼 대부분의 것을 그와 연관 짓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스스로 답답하였고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감정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정의 마음과는 별개로 내가 사라지는 경험은 원하지 않았고 내 일상은 나의 것, 그러므로 온전히 나의 생활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편이었지만 감정에 있어 열심히란 건 때론 일상을 흐리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무의미 하나 바람처럼 공기처럼 자연히 스며드는 감정으로 마음을 대체해보고자 하였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감정은 퇴색하는 게 아님을 정확히 알게 된 이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