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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의뜰 Jun 14. 2023

우리는 꼭 다시

"우리는 꼭 다시 만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슬프지도 않다."


 무심코 손에 들었던 소설책이었는데 하필 저런 모양의 문장이 나타났다. 꼭 나에게 해주는 말처럼 들려서  오랫동안 책을 바라봤다. 난 사실 아주 잘 알고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고를 반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번 슬퍼하고 또 기뻐하고 애타하면서도 설레는 것은 사람 마음이란 것이 원래 시소처럼 왔다 갔다 어린애 마음처럼 변덕이 심한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어떤 날 들이 일렬로 쭉 늘어섰다. 어떤 날은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날이었고 어떤 날은 잠깐 잊고 살기도 하는 쿨한 날이었고 또 어떤 날은 내가 먼저 고백하고 싶었던 날이었다. 그러던 중 , 가장 만나기 싫었던 어떤 날이 주기처럼 찾아왔다.  제발 나를 그리워해달라고, 나를 많이 보고 싶어 해 달라 구걸하고 싶던 날. 구걸이라도 해서 마음을 가져보고 싶어 안달이 났던 그런 날이었다. 그 감정 때문에 초라함이 너무 깊어서  발이 닿지도 않던 그런 날이었다. 차라리 이런 감정정해 버리자  하고 나니 마음은 급격히 차분해졌다.  마음에 얹힌 것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에게 나를 좀 좋아해 달라 구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부터 자존심을 좀 덜 부리고 싶어졌다. 그는 아무런 허영을 부리지 않고 어떤 허세도 드러내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었고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지조차 명확히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내가 더 많이, 깊이 좋아한다고 믿어서 혼자만 자존심을 부렸던 건지도 몰랐다. 내 풀에 지쳐 화를 낸 건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성인군자라도 된 것처럼,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걸로 해, 그냥 그런 걸로 해. 하며 마음을 가장 밑바닥에 내려놓기로 했던 거다. 사랑을 구걸하다가 왜 내가 더 좋아하는 걸로 해.라는 말로 귀결이 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구걸하지 않아도 사랑은 사랑으로 머물거란 믿음이 있었다.  굳이 구걸이라는 말로 사랑을 받아내고자 하는 것은 그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이 너무 커다랗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고 나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제 멋대로 간절해진 내 마음이란 놈 때문이었다. 난 이런 나의 간절함을 바닥에 내려놓아 조금은 흘러가도록 두어야 했다.


 어떤 날 중 가장 산뜻한 날을 되찾아 와야 했기 때문에. 그를 향한 내 마음이 구걸로 귀결되지 말고 풋풋한 첫사랑 느낌으로 귀결되어야 마땅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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